[AI 만난 신약개발]② 구글과 엔비디아가 바꾼 신약개발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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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7. 오후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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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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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바이오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
국내외서 AI 신약개발 시도 활발
세상에 없던 단백질 찾고, 전통 제약사와 협력도
“아직은 기술 더 성숙해야, 맞춤형 의료 판도 바꿀 것”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용 반도체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기업이다. 엔비디아의 GPU 생산을 맡은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 TSMC도 덩달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최강자로 자리 잡은 엔비디아인데 최근에는 바이오 업계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에이브러햄 스턴 엔비디아 프로덕트매니저는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엔비디아의 바이오네모(BioNeMo)는 신약 개발을 위한 저분자, 단백질 설계 생성형 인공지능(AI) 플랫폼”이라며 “10년 이상의 시간, 20억달러(약 2조7500억원)를 투자하고도 성공률이 10%에 미치지 않는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젠슨황이 지난달 18일 키노트 강연에서 AI와 기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신약 개발 AI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바이오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AP 연합뉴스


엔비디아는 차세대 먹거리로 신약 개발을 위한 AI 모델을 지목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지난 3월 24일 열린 ‘GTC 2024′ 콘퍼런스에서 의학과 헬스케어 분야의 파트너십 20개를 발표했다. GE 헬스케어나 존슨앤드존슨 같은 굵직한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ICT 기업으로만 여겨졌던 엔비디아가 바이오 산업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이오 업계가 엔비디아에 손을 내민 이유는 AI 반도체 기술이 신약 개발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AI 모델을 이용한 신약 개발에 나선 기업은 엔비디아만은 아니다. 이미 알파벳의 AI 자회사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인 ‘알파폴드’를 선보이며 AI 신약 개발의 포문을 열었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창업자는 AI 신약 개발 기업 아이소모픽 랩스를 창업해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AI 신약 개발에 바이오 업계가 들썩이는 이유는 그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단백질 신약 개발이기 때문이다. 항체, 저해제 같은 단백질을 이용한 의약품은 그간 치료가 어려웠던 질병의 새로운 돌파구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단백질 치료제 시장은 3227억달러(약 444조원)에서 2028년 4870억달러(약 670조원)로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알파폴드가 해독한 여러 단백질의 3D 구조. 다양한 단백질 구조를 통해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기능이 구현된다. /구글 딥마인드

AI 신약 개발에 뛰어든 ‘K-스타트업’도 있다. AI를 이용한 단백질 구조 분석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같은 선도국에 못지 않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박한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은 “리딩 그룹의 연구력만 놓고 보면 한국도 미국, 중국의 리딩 그룹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 갤럭스도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석 교수는 AI 단백질 구조 분석, 설계와 관련해 국내 연구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연구자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내 연구자 상당수가 석 교수의 제자들이다. 석 교수가 만든 갤럭스는 AI 모델 ‘갤럭스 바이오 디자인(GBD)’을 개발해 자체 신약 개발을 꿈꾸고 있다.

갤럭스의 전략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고 이를 의약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은 “AI로 단백질 구조를 찾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프로틴 엔지니어링’과 ‘드노보 디자인’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프로틴 엔지니어링은 기존에 있던 단백질에서 구조를 바꿔 치료제로서 효능을 높이는 방식이다. 반면 드노보 디자인은 아예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박 부사장은 “프로틴 엔지니어링은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다만 사람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인 만큼 단순히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수준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프로틴 엔지니어링이 기존 단백질 치료제의 효능을 높이는 것이라면 드노보 디자인은 치료제가 없던 불치병에 대한 치료제까지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박 부사장은 “단백질 치료제로 쓰이는 항체는 치료제로서 많은 장점이 있으나 생물학적으로 항체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들이 있다”며 “대표적으로 세포의 이온 통로인 ‘GPCR’을 막는 항체를 만들어 항체 항암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석차옥 갤럭스 대표가 '2024 애널리스트 초청 유망 바이오 기업 IR 콘퍼런스'에서 인공지능(AI) 인실리코 기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뉴스1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 히츠를 창업한 김우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전통 제약사와 협업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 교수는 “신약 개발 플랫폼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는 플랫폼 개발 기업이 다른 기업에 플랫폼을 이용하게 해주는 대신 서비스 이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히츠의 AI 모델은 ‘하이퍼랩’으로 일종의 가상 실험실에서 고객들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게 돕는다. 실험실 역할을 하는 ‘랩스페이스’에서 동료를 모아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공유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서비스 가입자가 250명 정도로 현재는 제약사보다는 연구기관과 대학이 주요 고객”이라며 “해외에서도 오킨, 이토스, 머크 같은 기업이 비슷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츠는 앞으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과 오믹스로 활용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mRNA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제약사가 이 분야에 뛰어드는 만큼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교수는 “다른 신약 개발 스타트업이 연구를 위해 자체적으로 AI 모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AI 모델을 이용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어 주요 고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신약 개발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분야는 단백질 치료제이지만 화합물을 이용한 저분자 치료제에서도 활용 가치가 크다. 신지윤 신테카바이오 신약개발 전략기획팀장은 “결국 저분자 치료제도 원하는 단백질과 결합하는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다만 저분자는 워낙 다양성이 커 예측 난이도가 더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단백질 구조 예측, 설계에서 주목 받던 AI 모델이 최근에는 모든 분자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지난해 말 ‘알파폴드 레이티스트’를 출시하고 단백질과 저분자의 결합을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테카바이오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딥매처’를 통해 저분자 신약을 찾는 기존 제약사들과의 협력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개발한 신약 개발용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작동 원리. 단백질과 약물 분자의 상호작용 패턴을 사전 학습해 적은 데이터로도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낸다./한국과학기술원

일각에서는 AI가 10년 이상 걸리던 신약 개발을 2~3년으로 단축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지만 정작 업계 관계자들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기술로는 신약 개발의 첫 시작인 후보물질 발굴에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 약으로 쓰일지 찾는 데 드는 수고와 비용을 줄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김 교수는 “결국 신약 개발에 성공하려면 부작용과 독성, 안정성처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며 “이런 분야에서도 AI가 더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이 보다 성숙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함께 내놨다. 김 교수는 “신기술이 기존 기술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공존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며 “현재도 여러 기술이 공존하면서 성숙해가는 시기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AI는 오히려 환자 맞춤형 의료에 적합한 기술로 보인다”며 “더 많은 치료제를 빨리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 약물을 환자 특성에 맞춰 개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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