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슈퍼 을’로 키운 회계사 출신 수장···10년만에 '반도체 장비 최고기업' 만들어[Global Who]

이완기 기자 2024. 4. 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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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 출신이 반도체 장비기업 맡아
깊은 통찰력으로 산업 흐름 꿰둟어
2016년 EUV 노광장비 세계 첫 선
재임 10년간 매출 4배 이상 늘리고
시총 270억 유로서→3330억 유로
큰 성과 이루고 24일 CEO직 퇴임
“다양한 대화” 이재용 회장과 ‘친분’
[서울경제]

‘반도체 슈퍼 을(乙), 유럽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테크 기업.’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을 둘러싼 수식어들이다.

1984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출발한 작은 회사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이런 수식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ASML의 놀라운 성취 뒤에는 페터르 베닝크 전 최고경영자(CEO)가 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평범한 중소기업을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로 이끈 그가 이달 24일(현지 시간) ASML CEO직에서 내려왔다. 베닝크가 ASML을 이끈 10년간 매출을 비롯한 각종 경영 성과, 반도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ASML은 필립스와 ASM인터내셔널이 1984년 합작해 만든 회사다. 베닝크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필립스는 우리를 가끔 뼈를 던져주는 뒷마당에 있는 강아지 정도로 여겼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ASML은 10여 년 전 네덜란드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비교적 작은 회사였다”면서 “베닝크는 ASML을 세계에서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일한 기기 공급원’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성취로는 2016년 ASML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꼽힌다. 노광장비는 빛을 웨이퍼에 비춰 미세회로를 새기는 장비로, 5㎚(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대당 가격이 수천억 원에 달하지만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한 대라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반도체 슈퍼 을’이라는 별칭이 나온 배경이다. ASML은 1990년대 말부터 장비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2016년부터 시장에 내놓았고 그때부터 ASML의 역사가 달라졌다. 특히 회사의 덩치가 급격하게 커졌다. 지난해 회사가 올린 연간 매출은 290억 달러. 그가 CEO로 처음 부임한 2013년(70억 달러)보다 4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회사 주가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시가총액은 지난 10년간 270억 유로에서 3330억 유로로 급증했다.

올해 1월 24일 네덜란드 팰트호번에서 열린 한 기자회견장에서 ASML의 페터르 베닝크(왼쪽) 최고경영자(CEO)와 회사의 새 대표로 임명된 크리스토프 푸케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가 회계학을 전공한 재무통 출신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ASML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참여하기 전 딜로이트에서 회계사로 약 20년간 일했다. 하지만 ASML에 합류한 뒤 산업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남다른 책임감을 발판으로 2013년 CEO 자리에 올랐다.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반도체 기업이 회계사 출신을 수장으로 앉힌 것은 다소 이례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역시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극구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술 분야 총괄 책임자를 두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면서 ASML 대표로 취임했다.

업계에서는 그가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짚는 탁월한 안목과 판단력을 갖췄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5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베닝크의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FT는 CEO 취임 2년을 맞은 그에 대해 “경영자 베닝크는 20년 동안 딜로이트 출신답게 여전히 컨설턴트의 분위기를 풍긴다”면서도 “칩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그는 호텔 문구류를 들고 레이저 에칭의 해상도를 계산하는 물리학 방정식을 그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베닝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남다른 책임감이다. 그는 최근 ASML 대표이사 퇴임을 계기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저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랐다”며 “그 책임감은 제 인생의 공통분모”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 내에서도 항상 책임감을 느꼈다”며 “회사가 성장했지만 고객, 직원, 공급 업체를 우선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앉아 있을 때도 내 머릿속은 오로지 ASML의 이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베닝크는 특히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도 친분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ASML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었다. 베닝크는 2022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관련해 “(이 회장과) 수년간 교류하고 만나며 친분을 쌓았으며 비즈니스, 사업 환경, 개인사 등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베닝크가 떠난 ASML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에 대한 제재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의 30~40%가 중국에서 나오는 ASML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간 베닝크는 미국 측의 요구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왔다. 대중 수출통제는 결국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국산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게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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