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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편식하는 개미 현대로템·엔켐·삼성重 외국인 장바구니서 힌트 찾아라

문일호 기자
입력 : 
2024-04-26 16: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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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다각화' 외국인 순매수 상위종목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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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올인했던 회사원 김 모씨(37)는 이달 주가가 조정을 받자 최근 주식 절반을 매도했다. 종가 기준 사상 최고가였던 8만8000원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란 예상에 그도 이달 개인투자자의 매도세에 합류한 것.

4월 들어 22일까지 개인의 삼성전자 순매도 금액은 3248억원에 달한다. 개인들의 매도는 네덜란드 ASML과 대만 TSMC 같은 국외 반도체 기업들의 올해 첫 성적표가 예상보다 부진했던 점이 주된 원인이었다.

인공지능(AI) 칩 등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매출 전 세계 1위 TSMC는 올해 위탁생산 성장률을 기존 20%에서 10%대 중반으로 낮춰 시장에 공포감을 조성했다. 고성능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의 1분기 실적은 반도체 거품론에 힘을 실어줬다. 1분기 매출이 작년 4분기보다 27%나 줄었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들의 실적 부진이 결국 삼성전자의 전망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김씨는 "AI 관련 반도체 주문은 이미 다 끝났고 전자제품 수요도 부진해 반도체 주식 조정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며 "다른 업종 대표 주식들을 담아 주가 조정기를 버티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반도체 이외의 업종 대표주를 매수해 포트폴리오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들이 참고하는 것이 외국인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업종 내 대표 주식이긴 하나 상대적으로 소외됐거나 저평가된 주식들을 조용하게 사모으고 있다. 방산업종의 현대로템, 2차전지 소재주 엔켐, 조선업종의 삼성중공업 등이 해당 종목들이다.

김씨처럼 반도체에서 빠져나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는 투자자들은 이들 종목을 주목하고 있다. 이달(4월 1~22일) 외국인은 현대로템 주식을 144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미사일을 주고받으며 전면전 양상으로 가자 국내 방산주들은 함께 들썩이고 있다. 이 와중에 현대로템은 방산 대표 주식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보다 저평가돼 외국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2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향후 12개월 순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8.25배다. 같은 기준으로 현대로템은 16.03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올해 들어 지난 23일까지 79% 올랐는데 현대로템의 상승률은 53%로 덜 올랐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현대로템이 이런 간극을 메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동력은 1분기 '깜짝 실적'이다.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한 달 새 현대로템의 영업이익 추정치를 50%나 끌어올렸다. 현대로템의 실적은 폴란드로 설명된다. 전쟁 대비용으로 폴란드가 현대로템에 무기를 대거 발주했고, 1분기 실적에 K2전차 18대 납품이 반영될 예정이다. K2전차로 대표되는 현대로템은 향후 820대 규모의 추가 계약을 앞두고 있다. 500대는 현지에서 생산하고 전차 기술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논의가 폴란드 측과 진행 중이다.

증권가 관계자는 "무기 수출 관련 정보는 모두가 알거나 모두가 모르거나 하는 식으로 오히려 정보의 비대칭성이 없다"며 "일반 투자자들이 실적만 보고 투자하기 적합하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의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540억원이다. 이는 작년 1분기보다 69.2% 급증한 수치다.

법 개정의 최대 수혜주라는 호재도 있다. 무기 수출은 워낙 금액이 커서 수입하는 쪽에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작년에 폴란드가 무기 수입을 크게 늘렸는데 은행의 자금 지원 한도가 다 차서 추가 수출이 지연되기도 했다. 자금 지원은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진행하는데 올해 수은법 개정으로 자본금 한도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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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기준 현대로템의 현금성자산은 3961억원이다. 현금성자산을 기준으로 주가 수준을 가늠할 수도 있다. 지난 23일 기준 현대로템 시가총액이 4조4475억원으로, 현금성자산 대비 11배 수준이다. 같은 기준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성자산 대비 시총은 6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성자산이 1조8064억원으로 현대로템보다 4.6배나 많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순익 기준으로는 현대로템이 저평가돼 있지만, 현금성자산 기준으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더 싼 주식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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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켐은 2차전지 소재주다. 2차전지를 만드는데 전해액 등 4대 소재가 핵심 재료다. 다른 핵심 소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등이다. 엔켐은 국내 최대 전해액 생산기업이자 글로벌 점유율 4위 회사다.

기존 전해액 소재 기술력을 키우면서 전기차 중심의 제품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작년에 지속적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투자금을 모았고, 국내 비상장사 '티디엘' 인수와 미국 테네시주 설비투자 등으로 계속 성장 중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주식이다. 성장성이 멈추면 곧바로 주가가 급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리스크가 반영되면서 엔켐 같은 주식에 대한 증권가 분석이 드문 상태다. 올해 엔켐에 대해 보고서를 낸 곳은 대신증권뿐이다. 독보적인 위치를 감안하면 엔켐에 대한 증권가의 분석이 부족한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미국이 중국 전해액 업체들을 견제하고 있어 엔켐은 북미 지역의 유일한 전해액 업체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다른 업체들이 진출하고 싶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엔켐의 올해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엔켐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247억원, 30억원이었다. 대신증권은 2025년 엔컴의 매출이 2배 이상으로 뛰어 1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증권사 양지환 연구원은 "엔켐은 배터리 고객사들과 함께 미국 현지에 진출해 2025년 이후 생산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유럽의 경우 폴란드와 헝가리를 중심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현지 물량을 받아 실적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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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엔켐과 함께 1분기에 주목받는 주식으로는 삼성중공업이 있다. 국내 조선 삼총사인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 1분기에 나란히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이들이 함께 흑자를 낸 것은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이제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저가 출혈경쟁이 멈출 것으로 기대된다.

3사 중 이달 외국인의 '원픽'은 삼성중공업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의 삼성중공업 순매수 금액은 841억원이다. 같은 기간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은 외국인이 모두 순매도하고 있다. 외국인이 이달 삼성중공업에 러브콜을 보낸 이유는 실적과 수익성 덕분이다. 삼성중공업의 1분기 영업이익은 844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 196억원에서 4배 이상 늘어나는 급성장이다.

다른 조선사 대비 마진이 높은 것도 삼성중공업의 투자 매력을 높인다. 삼성중공업의 영업이익률은 2023년 2.91%였는데 올해 예상치는 4.35%다.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률은 각각 3.79%, 2.69%에 그치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높은 마진은 그만큼 공격적인 선박 영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2021년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2척에 대한 공동 건조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계약금만 7조5000억원에 달해 삼성중공업 연간 매출(2023년 8조94억원)에 버금간다. 증권가 관계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삼성중공업 계약건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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