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타임즈=정인혁 기자]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1분기 실적을 연이어 발표한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둔화) 직격탄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저하고’ 전망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상반기 '방전'된 실적이 하반기에 '충전'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오전 콘퍼런스콜을 통해 올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SDI와 SK온도 각각 오는 30일, 29일 실적을 발표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1분기 매출 6조1287억원, 영업이익 157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9.9%, 75.2% 줄어든 수치다. 회사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세액공제(AMPC) 혜택으로 1889억원을 수령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316억원의 영업손실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부터 AMPC를 영업이익에 반영했다. 지난해 1분기 1003억원, 2분기 1109억원, 3분기 2155억원, 4분기 2501억원 등 혜택을 받아오며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 1분기는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적자로 돌아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1분기, 테슬라에 공급 중인 원통형 배터리가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달성했으나 전방 시장 수요 둔화와 메탈 가격 하락분 판가 반영 등의 요인으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이 위축되면서 지난해 4분기부터 가동률을 낮춘 폴란드 공장의 적지 않은 고정비 부담도 영향을 미쳤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올 한 해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이 예상되지만, 근본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꾸준히 실현해 압도적 기술 리더십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단단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생산 시설 확대 등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를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미국 테네시 GM 합작 2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GM의 3세대 배터리 플랫폼 기반 신규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착공에 들어간 애리조나 공장은 북미지역 첫 원통형 공장, ESS 첫 전용 공장으로 46시리즈와 LFP 기반 ESS 생산할 계획이다. 

다른 경쟁사들도 부진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의 1분기 컨센서스는 매출 5조2098억원, 영업이익 2442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7%, 34.9% 낮은 수치다. 

삼성SDI는 그간 프리미엄 제품인 각형 P5와 P6를 중심으로 실적을 방어해 왔다. 삼성SDI의 프리미엄 전기차 매출 비중은 60%를 넘긴다. 이 시장의 경우 주 고객층이 경기변동에 민감하지 않다는 특성이 있어 비교적 견조한 실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캐즘의 직격탄은 피하지 못할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SK온은 올 1분기도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SK온이 이번 분기 4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1분기에는 영업손실 3447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상황에 적자가 지속돼 고민이 커지는 것이다. 

SK온은 올해만 7조5000억원 수준의 설비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상황이 좋지 않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50조8155억원으로, 전년도 43조9766억원 대비 15.5% 증가했다.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는 2년 새 두 배가량 급증해 30조원에 육박한다. 

배터리 3사가 부진을 피하지 못한 데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전기차 수요 둔화가 길어지고 이에 따른 감산 정책이 그 요인들이다.

실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1분기 글로벌 고객 인도량은 38만6810대로,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제너럴모터스(GM) 전기차 판매량도 같은 기간 20.5% 감소했다. 이에 따른 결과로 GM은 전기 트럭 생산을 1년 미뤘다. 

포드 역시 최근 테네시주에 건립하고 있는 전기차 생산단지 ‘블루오벌 시티’에서 생산 예정인 차세대 전기차 픽업트럭의 고객 인도를 2025년에서 2026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의 가격 하락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지난해 메탈가 하락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통상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은 배터리 판가에 3~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광물 가격이 내려가면 고객사가 제품 가격 반영을 요구하는데, 수개월 전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 탓에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반등에 대한 기대가 확대되고 있다.

우선 전기차 시장 둔화 우려에도 올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 수요가 1.2테라와트(TW)로 지난해 대비 20%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도 올해 1~2월 전 세계 등록된 전기차 수가 총 184만여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4% 증가했다고 분석하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봤다.

이에 더해 하반기 완성차 업체들의 2025년식 신차 출시와 미국 금리 인하 가능성으로 전기차 소비를 불러올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게 하반기에 신차 출시가 이어지고 미국 금리 인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만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갈수록 전기차 가격이 하락하고,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열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다. 여러 호재가 하반기에 예정된 만큼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핵심 원자재 가격도 상승이 예고돼 있다. 지난달 탄산리튬 가격은 kg당 104위안으로 연초 대비 20% 올랐고, 니켈 가격도 t당 1만7432달러로 8%가량 올랐다. 가격이 점차 정상화되고, 재고 문제도 해결되면 다시 성장세에 오를 것이란 분석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금리 인하, 리튬 가격 상승 등 하반기 반등을 예상할 수 있는 여러 요인이 보인다. 이차전지 산업은 성장세에 있는 시장인 만큼 상저하고로 봐야 한다”면서도 “다만 중국업체와의 경쟁에 있어서 우위 확보에 실패하면 다시 하락세에 접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