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기술특례 상장 잔치에 개미들은 ‘피눈물’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2024. 4.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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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 사태 이어 시큐레터도 상장 8개월 만에 거래정지
기술특례 상장 문턱 낮추자 부실기업 IPO 횡행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지난해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가 기술특례 상장 직후 실적 급감 발표로 이른바 '파두 사태'를 일으킨 데 이어 최근 사이버보안 전문기업인 시큐레터도 상장 8개월 만에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을 받고 주권 거래가 정지되면서 기술특례 상장 제도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우수한 기술을 가진 기업의 상장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기술특례 상장 제도가 부실기업 IPO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한국거래소 로비에 모여있는 취재진 모습 ⓒ연합뉴스

부실기업 IPO에 악용되는 기술특례 상장

당초 기술특례 상장은 우수한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자금난으로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자 기업에도 예외적으로 상장을 허용해 주던 제도였다. 하지만 기술특례 상장 문턱이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최근에는 벤처캐피털(VC) 등이 부실기업을 상장하거나 기업 가치를 최대한 부풀려 상장함으로써 일반투자자들을 '등쳐먹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시큐레터의 주권 거래가 4월5일 오후부터 정지되면서 투자자들은 자신의 주식을 매도할 수 없게 됐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시큐레터의 감사의견 비적정설이 돌자 거래를 정지시키고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이에 시큐레터는 2023사업연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감사인 의견거절은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에 따라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시큐레터는 지난해 8월24일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기업이 8개월 만에 회계 부실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것이다.

시큐레터에 대해서는 현재 금융감독원의 포렌식이 진행되고 있어 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 적정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감사를 맡은 태성회계법인은 "회계 부정이 의심되는 사항에 대해 회사의 재무제표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회사의 내부감시기구에 조사를 요청했으며 회사의 내부감시기구는 외부 전문가를 선임해 조사를 진행했다"며 "회계 부정과 관련된 내부감시기구의 최종 조사 결과 및 외부 전문가의 최종 조사보고서를 감사보고서일 현재까지 수령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큐레터 거래정지는 지난해 10월 파두 사태의 여진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벌어졌기에 시장의 충격은 한층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두는 지난해 10월 상장하면서 2023년 연간 매출 추정액을 1202억원으로 제시했고 이에 기반해 시가총액 1조원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상장 직후 2023년 2분기 매출이 5900만원, 3분기 매출이 3억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에 휘말렸다. 일부 주주는 파두와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들어갔고 금융감독원 역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파두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은 IPO에 나선 기업들에 직전 월까지의 매출과 영업손익 등을 증권신고서에 적도록 하고 있다.

파두와 시큐레터 모두 기술특례 상장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술특례 상장에 대한 불신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시큐레터 역시 파두처럼 적자기업이었다. 2020년 매출 12억원, 영업손실 17억원을 냈고 2021년에는 매출 19억원, 영업손실 32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매출 27억원, 영업손실 55억원이었다. 시큐레터는 투자자들을 상대로 앞으로 매출이 늘어나면서 흑자 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난해 7월 상장 기자간담회에서 임차성 시큐레터 대표는 "2023년 매출 57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통상 기업들은 연말에 예산을 집행하기에 하반기에 매출이 발생하는데 올해는 상반기에 벌써 16억원가량을 달성했기에 연말까지 충분히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큐레터는 2023년 사업보고서상 매출 26억원, 영업손실 57억원을 기록했고 그마저도 감사보고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기술특례 상장 제도는 2005년 도입됐다. 기술력은 우수하나 재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혁신기업이 자금을 유치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중 2개의 기관으로부터 받는 기술평가를 통과하면 적자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술특례 상장이 가능하다. 상장 이후에도 상장 유지를 위한 재무적 요건을 장기간 적용받지 않는 특혜도 받는다.

당초 기술특례 상장은 바이오기업만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2014년까지 기술특례를 통해 상장한 기업은 총 14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문턱이 계속 낮아졌다. 2014년부터 바이오에서 전 업종으로 상장 요건이 완화됐다. 2017년부터는 기술평가 외에 성장성 평가를 통과하면 상장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편됐다. 2021년부터는 유니콘 특례제도가 도입되면서 시가총액 1조원 이상 기업은 기술평가를 생략하고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이면 1개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A등급 이상을 받으면 상장이 가능해졌다.

올해 1월부터는 기술력 있는 기업은 '혁신기술 트랙'을, 사업모델이 차별적인 기업은 '사업모델 트랙'을 활용하도록 유형이 단순화됐다. '초격차 기술특례'도 도입됐다. 국가적으로 육성이 필요한 첨단전략 분야 기업 중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을 검증받은 기업은 전문평가기관 한 곳으로부터만 A등급 이상을 받으면 상장할 수 있게 됐다. 벤처 스타트업이 아니라 최대 출자자가 중견기업일 경우에도 상장이 허용되도록 출자자 요건도 완화됐다. 덕분에 기술특례 상장 건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7년 7건이었던 기술특례 상장은 2018년 21건, 2019년 22건, 2020년 25건, 2021년 31건, 2022년 28건, 2023년 35건이었고, 올해는 4월3일 아이엠비디엑스 상장까지 벌써 8건이다.

기술특례 상장한 기업들 상당수 부실화

하지만 상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부실기업 상장 논란, 뻥튀기 상장 논란도 증가하고 있다. 기술특례 상장은 적자기업을 상장시키는 만큼, 미래 실적을 추정한 다음에 이를 기준으로 기업 가치를 측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래의 추정 수익을 기준으로 불확실성 및 리스크를 반영해 할인하는 DCF(현금흐름할인법) 등이 자주 적용된다. 하지만 미래의 추정 수익과 불확실성 및 리스크를 계산하는 할인율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모두 다르기에 표준화된 수치가 없다. 무엇보다 기업들과 상장 주관사는 기업 가치와 공모금액을 최대한 부풀릴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라 뻥튀기 상장에 대한 유인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들 상당수는 이미 부실화됐다. 2005년 기술특례 상장 1호였던 헬릭스미스는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 기업이었지만 임상 3상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존폐 위기에 몰렸다. 결국 2022년 카나리아바이오엠에 회사가 넘어갔다가 지난해 바이오솔루션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이 외에 제넥신이나 신라젠 등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 역시 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8년 성장성 특례상장 1호 기업으로 증시에 입성한 셀리버리 역시 2년 연속 감사의견 거절, 완전자본잠식 등으로 상장폐지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3월 주식 거래가 정지되면서 투자자들은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7월 민관 합동 관계기관 회의를 거쳐 기술특례 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상장 주관사의 책임 의무도 강화됐다. 최근 3년 이내 상장을 주선한 기술특례 상장기업이 2년 이내 부실화할 경우 상장 주관사의 의무보유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되고 향후 기술특례 상장 주선 시 풋백옵션(환매청구권) 의무를 부여한다. 풋백옵션은 일반투자자가 공모주 청약으로 배정받은 주식이 공모가 대비 90% 이하로 하락하면 상장 주관사에 되팔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이 같은 제재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라는 지적 역시 그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실기업 상장의 경우 주관사뿐만 아니라 상장 심사를 맡은 한국거래소와 회계법인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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