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영표 활약한 축구팀…‘이 기업’ 동아리에서 시작했다는데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4. 2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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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51][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43]필립스 형제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스토리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레전드가 첫발 내딛은 유럽땅
현재 유럽 축구계에는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선수 등이 활약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보다 앞서 2002년 월드컵에서 대활약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유럽 축구계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손꼽히는 박지성, 이영표 선수도 월드컵 직후 각각 영국을 대표하는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었습니다.
PSV와 계약한 박지성(왼쪽), 이영표(오른쪽) 선수 (출처=PSV)
그리고 잘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월드컵 직후 두 선수가 첫 발을 내딛은 유럽 땅은 영국이 아니라 바로 네덜란드였습니다. 대한민국을 당시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국가대표 감독 거스 히딩크는 이 두 선수를 꼭 집어 네덜란드의 한 프로축구 구단으로 데리고 갔는데요. 당시만 해도 유럽 축구에 대한 인지도가 지금만큼 높지 않았을 뿐더러 네덜란드 리그에 어떤 팀이 있는지도 잘 모를 시기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영웅들이 활약했던 이 팀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명문구단 ‘PSV 에인트호번’입니다. 갑자기 왜 또 2002년 월드컵을 소환해 추억팔이를 하냐고요?

오늘의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의 주인공, 바로 필립스 형제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전동칫솔, 면도기 등 생활가전 브랜드로 친숙하지만 한때 TV 등 글로벌 가전 시장을 놓고 한 때 삼성전자와 라이벌을 구축할 만큼 거대 전자 회사였던 필립스의 흥망성쇠를 추적해봅니다.

세계 명문팀이 된 회사 축구 동아리
PSV 에인트호번. 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해당 팀의 연고지는 네덜란드 제5의 도시라 불리는 에인트호번입니다. 그렇다면 PSV는 무슨 뜻일까요? PSV는 Philips Sport Vereniging의 약자입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필립스 스포츠 연합’ 정도로 해설할 수 있겠습니다. 필립스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왜 갑작스럽게 2002년 월드컵 영웅들을 소환한 이유가 바로 이 것입니다.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13년 창단한 PSV 에인트호번은 당시 에인트호번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때) 세계적 전자기기 업체 필립스 전자의 직원들이 만든 축구 클럽이었습니다. 이를 필립스 전자에서 전사적으로 지원하고 후원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죠.

필립스 스타디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의 클럽이란 인식이 강했지만 이후 필립스가 본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했고 1980년대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황금기를 누리며 명문구단으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홈구장 역시 3만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필립스 스타디움입니다. 유튜브에 들어가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활약했던 당시 영상을 찾아보시면 유니폼 가운데 필립스 로고가 선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밤을 밝힌 전구, 필립스 가문을 빛내다
자, 다시 필립스의 창업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필립스는 제라드 필립스와 그의 동생 안톤 필립스, 그리고 제라드의 아버지 프레데릭 필립스가 힘을 합쳐 창업한 가족기업입니다. 유대인 가문 출신인 필립스 가족들은 태생적으로 장사에 능했고 수완이 좋았습니다.
제라드 필립스
제라드의 할아버지는 담배를 사고파는 상인이었고 아버지 역시 사업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필립스 전자 창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제라드 필립스는 1858년 네덜란드 잘트보멜에서 프레데릭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라드는 어릴 때부터 장사와 공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결국 그는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대에 진학해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기술 전문성을 길렀고 졸업 후 런던으로 떠나 전구 등을 취급하는 가게 대리점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선 토머스 에디슨이 1879년 성공적으로 백열등을 발명하며 낮과 같은 밤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에디슨은 프랑스 파리에서 그가 발명한 전구를 전시했고 독일에서는 에디슨 특허를 취득해 독일-에디슨 회사가 1883년 설립됐습니다. 제라드 역시 이러한 시대를 관통하는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일하며 산업혁명의 움직임을 몸소 체험했고 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로 돌아가 사람들의 삶을 혁신할 전구 제품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아버지와 동생까지 합류한 필립스 가문의 도전
그렇게 그는 전구에 빛을 제공하는 탄소섬유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사업화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로부터 창업 자금을 지원받고 동생 안톤 필립스와 함께 1891년 전구의 필라멘트에 쓰이는 탄소섬유와 전구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필립스 사가 세운 공장이 위치한 곳이 바로 에인트호번입니다. 이듬해인 1892년, 필립스는 연간 1만1000개의 전구를 생산했고 1893년엔 이보다 4배 늘어난 4만5000개를 생산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변국에서 필립스 전구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초창기 필립스 공장
특히 창업에 동참한 동생 안톤 필립스는 뛰어난 영업 실력으로 회사의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매일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시장을 분석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는데 몰두했으며 필립스식 기업 경영의 여러 노하우와 원칙들을 정립하는데 애 썼습니다.

결국 성공하는 가족 창업의 모범사례로, 형은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동생은 경영활동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필립스는 매년 급성장했습니다. 이후 전구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한 필립스는 1909년 금속필라멘트 전구를 제조해 이전 모델보다 훨씬 밝으면서 오래 가는 전구로 유명세를 더했습니다. 1900년대 초반에 필립스는 2000명 넘는 직원을 보유한 네덜란드 최대의 민간 고용기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구로 번 돈으로 새 사업에 도전하다
지금도 전구 하면 필립스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필립스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운 것은 여러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한 덕입니다. 1918년, 필립스는 X선 투시기 사업에 뛰어듭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멘스가 의료기기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세계대전의 발발로 지멘스 제품 수입이 어려워진 유럽 국가들이 대안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구 사업으로 승승장구 중이던 필립스는 병원들의 요청으로 X선 튜브 개발에 나섰고 이는 성공리에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의료기기 사업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필립스의 초창기 X레이 기계(출처=필립스)
뿐만 아니라 전구와 구조가 유사해 개발이 쉬웠던 진공관을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1위 라디오 제조사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1930년대엔 전기면도기 필립쉐이브를 출시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과 매력적인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필립스 형제가 이끈 필립스 전자는 20세기를 풍미한 유럽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으로의 면모를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제라드 필립스는 1942년 1월 네덜란드에서 숨을 거뒀지만 이들 필립스 가족 경영은 1970년대까지 이어지며 중흥기를 이끌었습니다.

이제 거대기업이 된 필립스는 TV, 영상장비, 음향장비, 반도체 등 각종 전자산업에 뛰어들며 글로벌 전자기업으로의 면모를 구축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며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 TV 등 각종 가전제품을 사기 시작하면서 필립스의 화려한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1971년 필립스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카세트 리코더(VCR), 1982년대 세계최초의 광디스크 저장장치 콤팩트 디스크(CD)를 개발하는 등 신기술을 주도하는 혁신기업으로 시대를 주름잡았습니다.

소니와 함께 CD 개발을 발표하는 필립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다만 너무 방대해진 회사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몸집을 줄이기 위한 각종 M&A와 사업 매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소니를 필두로 삼성전자, LG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전 산업과 반도체 산업으로 속속 진출해 주도권을 가져가며 필립스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결국 1991년 백색가전 사업부는 월풀로 매각했고 반도체 장비 사업 역시 1995년 매각해 버렸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세가 된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필립스가 포기한 사업은 현재 네덜란드 대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필립스 로고
현재 필립스는 면도기, 전동칫솔 등 여러 생활가전 사업과 함께 의료기기 산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만약, 과거 전성기의 필립스가 여전히 그 사업을 잘 유지해오고 있었다면 인공지능 시대 가장 빛나는 기업은 어쩌면 엔비디아도, 삼성전자도 아닌 필립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 속에서 여전히 글로벌 가전 브랜드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의 힘도 엿보이는 이유기도 합니다.

한 때 가장 밝게 빛났던 별이었던 필립스. 여전히 유럽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품고 있는 한, 언젠가 반전의 기회가 또 올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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