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PICK!] 미국·프랑스·중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이긴 나라는 어디?

이문수 기자 2024. 4.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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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베트남 한달살이 AtoZ] (7) 베트남 투쟁사
프랑스 제국주의 격퇴가 투쟁사의 서막
세계 최강 미국에 패배를 안긴 베트남전
같은 공산국인 중국의 침략에도 맞서 승리

‘점점 가까워지는 나라’
바로 베트남 이야기다. 베트남은 비행 시간이 길지 않고 물가도 저렴하다. 한류 열풍이 여전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도 우호적이다. 이런 이유로 단기 여행은 물론 한달 이상 장기 체류를 위해 베트남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자 역시 최근 1년새 여행과 취재를 목적으로 여러 차례 베트남을 찾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방문하고 싶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 현지 분위기, 생활상 등을 미리 공부해두면  여행의 깊이가 달라질 터! 2024년 달력을 보며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도전! 베트남 한달살이 A to Z’를 연재한다. 

여행 가기 전 해당 지역의 역사를 톺아보는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 과거의 역사는 지금의 문화·경제·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거울이라서 그렇다. 베트남은 특히 한반도의 역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한자문화권이고, 유교·불교를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념 대립으로 남과 북이 갈린 분단의 아픔도 공유한다. 베트남을 여행하려면 근현대 전쟁사도 꼭 살펴봐야 한다. 베트남은 서구 열강의 침탈 속에서 중요한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며 정체성을 지키고 고유의 문화를 꽃피워냈다. 

베트남 민족 지도자로 추앙받는 호찌민(맨 앞)과 그의 절대 지지를 받았던 보응우옌잡 장군(바로 뒤)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Vietnam Times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서구 열강을 격퇴하다=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중반까지 제국주의로 무장한 서구열강과 일본은 아시아를 무대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천명한 중국은 물론, 인도와 동남아시아, 조선도 예외 없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해 수탈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조선에 일본 제국주의가 마수를 뻗쳤다면 베트남엔 프랑스가 자리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1일~1945년 9월2일) 종전 후 대부분 식민 국가는 독립을 맞았으나 베트남은 그렇지 못했다. 식민지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프랑스를 상대로 호찌민이 이끄는 민족주의 저항세력은 전쟁을 벌였다. 1946년 12월19일부터 1954년 8월1일까지 이어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서막이었다. 

베트남 고지대에 있는 도시 달랏을 대표하는 ‘팰리스 헤리티지 호텔’의 다이닝룸 내부 모습.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유럽식 내부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이렇다 할 민족국가를 건설한 적이 없는 베트남과 2차 세계대전 승전국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싸움은 애초부터 ‘고래와 새우’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물러섬이 없었다. 베트남의 북부 도시이자 인도차이나반도의 전략적 요충지인 디엔비엔푸에 5만여명의 월맹군이 집결했다. 1954년 3월13일 프랑스군 진지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진을 친 베트남 5개 사단은 오후 5시부터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억수 같은 비처럼 쏟아진 포격이 끝나자마자 월맹 보병 부대가 돌격했다. 

프랑스는 곧 항복을 선언했다. 동양의 식민지 국가가 서양 제국주의를 패퇴시킨 일대 사변이었다.  ▲호찌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붉은 나폴레옹’ 보응우옌잡 장군의 지도력 ▲탄약과 식료품, 분해한 야포를 옮겨다준 짐꾼 ▲낯선 병사에게 기꺼이 쌀을 내어준 수십만의 농민이 합심해 이룬 ‘빛나는 승전보’였다. 

베트남 고지대에 있는 도시 달랏을 대표하는 ‘팰리스 헤리티지 호텔’의 정원 전경. 프랑스 식민지 시절 휴양 목적으로 지어져서 인지 유럽식 정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세계 최강 미국에 ‘첫번째’ 패배를 안기다=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19개국이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반도 현안을 해결하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서 베트남은 분단의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선에 군사분계선을 긋고 북부엔 베트남 인민군과 게릴라 부대가, 남부는 프랑스군과 바오다이 정부군이 터를 잡았다. 북쪽엔 호찌민을 위시한 사회주의 정권이, 남쪽엔 전 황제 바오다이를 수장으로 한 친미 성향 정부가 들어섰다. 

1963년 11월 케네디 암살 직후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은 ‘도미노 이론’ 신봉자였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나머지 동남아 국가에서도 도미노처럼 공산주의가 확산한다는 이론에 빠져 있었다. 

1964년 8월2일 베트남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해군 어뢰정이 미 해군 구축함을 선제공격한 일이 발생한다.(이후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려 사건을 조작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온다) 여기에다 1965년 2월 남부 해방군(사회주의 계열)이 베트남 중부에 있는 미군 헬리콥터 기지를 공격해 미군 병사 134명이 죽거나 다쳤다. 

존슨 대통령은 곧바로 해병 2개 대대를 파병하는 내용의 명령서에 서명했다. 같은 해 3월8일 미 해병대가 다낭에 상륙했다. 베트남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전장이 된 베트남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미군의 공습작전 암호명은 ‘롤링 썬더’. 1965년 3월2일 새벽 수백대의 미국 전투폭격기가 북위 17도선을 넘어 북베트남의 교량·철도·항구·운송시설 등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약 3년8개월간 미군 항공기가 30만회 출격하면서 북베트남에 무려 258만t의 폭탄을 퍼부었다. 한국전쟁 때 65만t의 폭탄을 소모한 것과 견주면 실로 엄청난 양이다. 

베트남전이 장기화할수록 반전 세력을 중심으로 미국 내 여론은 악화했다. 미국 본토의 추가 원조도 지지부진했다. 

북베트남은 이를 호기로 삼았다. 1975년 봄철 대공세를 감행하며 하루에 50㎞씩 남으로 진격했다. 4월30일 마지막 미군 헬리콥터가 짐을 챙길 새 없이 사이공을 떠났고, 인민군은 오전 11시 남베트남 대통령궁에 임시 혁명 정부의 깃발을 게양했다. 세계 최강 미국이 베트남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전쟁 경험이 풍부한 북베트남군은 지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게릴라전으로 끊임없이 미군을 괴롭혔다. 호찌민은 전쟁 준비와 더불어 민심을 얻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미군은 ‘주요 전략지 폭격’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오판 탓에 대사를 그르쳤다.   

남베트남은 싸울 의지가 없었다. 고위관리들은 종종 북베트남과 접촉하며 생존을 위한 타협에 나섰고, 티에우 대통령은 부정 축재한 막대한 재산을 외국으로 빼돌릴 만큼 국기문란이 극심했다. 

미군은 베트남전에서만 5만3800명이 전사했다. 베트남전은 ‘최강 미국도 전쟁에서 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반도처럼 베트남도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1954년 인도차이나반도 현안을 해결하려고 스위스에서 19개국이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북위 17도선을 긋고 베트남을 남북으로 나눈다는 ‘제네바 협정’이 체결됐다. ‘처음 세계사’(주니어 랜덤)

◆대국 중국을 ‘종이 호랑이’로 전락시키다=인도차이나반도에 미국이 떠나자 중국이 빈 곳을 노리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영향력이 커지자 중국은 1973년 이후 양국간 접경지대에서 1000건이 넘는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갈등은 극에 달해 결국 1979년 베트남·중국 전쟁이 발발했다. 

발단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1978년)이었다. ‘킬링필드(준 군사조직 크메르루즈가 자행한 자국민 학살)’로 악명높은 폴포트가 반베트남 민족 정서를 자극하는 한편, 캄보디아 왕국이 빼앗긴 고토를 회복한다며 수차례에 걸쳐 베트남 영토를 침공했다. 이에 베트남이 1978년 12월25일 10만 병력을 동원해 공격 개시 보름만에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켰다. 

중국도 뒷짐만 지지 않았다. 중국은 베트남 침공을 ‘베트남이 소련의 팽창주의에 가담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베트남을 혼내줘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마오쩌둥은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미국·일본을 순회하며 ‘베트남 징벌’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는 “작은 친구가 말을 안 들으면 엉덩이를 때려야 한다”는 말까지 남겼다. 

1979년 2월 중국은 50만 병력을 동원해 베트남 북쪽 변경 주요 도시를 점령했다. 하지만 베트남 수비대와 민병대는 미리 준비한 엄폐호와 산악 지형을 활용해 중국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트남군은 미국이 남기고 간 최신 무기로, 전쟁 경험도 없고 낡은 무기로 맞선 중국을 오히려 혼내줬다. 

중국은 결국 전쟁 개시 일주일 만에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고는 군대를 물렸다.  종전 직후 서방 주요 언론은 “베트남이 대중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중국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제국주의 프랑스를 몰아내고 대미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어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칭을 가진 보응우옌잡 장군. Vietnam Times

공산국가가 된 베트남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은 다른 듯 닮았다.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살갑게 느껴진다. 베트남의 숱한 승전사를 써 내려간 고(故) 보응우옌잡 장군이 국내 한 언론사와의 대담에서 한 이야기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노예로 사느니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인민의 의지가 베트남의 독립을 가져왔다. 결국 자유란 전쟁도 마다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베트남은 1000년간 외적의 침입을 견디며 이 땅을 지켰다. 프랑스군을 격퇴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 사람들은 3개월간 밀림을 뚫고 100여대의 대포를 맨손으로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하루 평균 800m씩 이동하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들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했다.”

[박스] 베트남에도 남북갈등이 있을까

베트남에도 한국처럼 지역갈등이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다. 베트남 역시 한국처럼 강대국에 의해 영토가 두동강이 났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러야 했다. 그래서인지 남북간 지역갈등이 특히 심하다.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호찌민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와 짧게 대화를 나눌 때의 일이다. 

“어디서 왔어요?”

“남쪽 사이공에서 왔어요.”

“음~ 사이공? 혹시 호찌민을 얘기하는 건가요?”

“남쪽 사람들은 호찌민이라는 지명을 잘 안 써요. 대화할 땐 사이공이라고 편하게 부릅니다.”

‘과거 지명을 병기해 쓰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순간, 동행한 한 현지 한국 법인장이 귀띔한다. 

“아시다시피 과거 공산진영의 북베트남과 민주진영의 남베트남이 전쟁을 했잖아요. 결국 남베트남이 무너졌고요.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하며 지도자의 이름을 기리려 ‘호찌민’으로 바꾼 것에 지금까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 북과 남을 대표하는 하노이와 호찌민은 다른 나라로 착각할 정도로 문화·경제·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자못 다르다. 수도 하노이는 보수적이다. 하노이 사람들은 중국과 인접해 있어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예의와 신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경제수도 역할을 하는 호찌민은 개방적이다.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니 북쪽 사람들보다 ‘사고의 유연함’을 더욱 강조한다. 

때론 첨예할 정도로 상호간 험담이 오가기도 한다. 익명에 기댈 수 있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게시판에선 하노이 사람들은 부를 마음껏 과시하고 자유분방한 호찌민 사람들을 ‘천박하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호찌민 사람들은 겸손하고 과묵한 하노이 사람들을 ‘음흉하다’고 손가락질한다. 

이런 베트남에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그 중심엔 박항서 감독이 일으킨 ‘K-축구’가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베트남 국가대표를 이끈 박항서 감독이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남북이 하나가 됐다. 베트남 정부가 박항서 감독을 극빈 대접하는 것이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가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대한상의 하노이사무소 관계자는 “박항서 감독 시절 베트남 총리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를 연일 칭찬한 것은 박 감독과 대표팀이 남북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도움말=우리역사넷, 처음 읽는 베트남사(오민영 지음),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유인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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