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찍은 사진 한 장 없던 김정은…코스프레 벗어나 홀로서기? [뒷北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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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0. 오전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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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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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북한 관련 소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는 [뒷北뉴스]를 연재합니다. 한주 가장 화제가 됐던 북한 관련 소식을 '앞면'이 아닌 '뒷면', 즉 이면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북한발 보도의 숨은 의도를 짚고, 쏟아지는 북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 '김일성 이미지' 이용해 등장한 김정은 …"체형까지 따라해"

2010년 9월 30일 KBS 뉴스9 화면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매체에 처음 등장한 2010년 9월 30일. 그날 KBS 뉴스9 제목은 <北, 김정은 모습 공개…“김일성 빼닮았다”>였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인민복 차림에 올림 머리, 살이 쪄 나온 이중 턱과 두툼한 체격. 군 고위간부들 사이에서 몸을 한쪽 팔걸이에 기댄 채 여유 있고 권위적인 태도까지. 공식 석상에 데뷔한 새 후계자의 모습은 영락없이 젊은 시절 김일성이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애나 파이필드 기자의 저서 <김정은 평전 : 마지막 계승자>에도 당시 그의 등장에 대해 "어떤 효과를 노리는지 뻔히 보였다. 바로 젊은 시절의 김일성을 빼닮은 것이었다"고 적었습니다.

2010년 9월 30일 KBS 뉴스9 화면

이전까진 스위스 유학 시절 찍은 홀쭉한 10대 시절 사진 몇 장 빼곤 김정은은 모든 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우상화를 위한 일종의 신비주의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잠행을 하다 마치 코스프레를 한 듯 김일성의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겁니다. 북한은 20대 청년에게 김일성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옷과 머리 모양은 물론 체형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기획했습니다.

김정은이 당시 할아버지 김일성의 이미지에 기대야 했던 것은 사실상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건강이 악화돼 권력 승계를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후계자로 입지를 다질 시간도 없었고, 아무런 성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장남도 아닌, 세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3남이라 '정통성 부족'이란 컴플렉스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결국, 단기간에 20대 젊은 지도자를 북한 주민들에게 납득 시키기 위해 꺼낸 카드가 바로 '할아버지 코스프레'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이란 깊고 짙은 상흔을 남긴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일성 시대'는 북한 사회의 전성기였습니다. 할아버지를 똑 닮은 '백두혈통'의 젊은 지도자가 다시 북한의 전성기를 가져올 거라는 환상을 '이미지'로 보여준 겁니다.

■ 할아버지를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손자 … 사진 한 장 없어

김일성이 생전에 총애한 손자는 김정은이 아닌 김정남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장손인 김정남을 자신의 별장에 데려가고 낚시도 같이할 정도 아꼈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정은은 김일성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손자로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겁니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가 본처가 아닌 데다 재일교포 출신이었기 때문에 정식 며느리로 인정받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 북한 사회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지 않기 때문에 많은 차별 대우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다며, "소위 백두혈통이라는 최고지도자의 모친이 재일교포라는 것이 북한 차원에서 쉽게 받아들여 지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김일성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면 초기에 정통성을 인정받기 훨씬 더 수월했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 김일성 '태양' 표현 지우는 북한 … 이례적 상황 이유는?

김씨 일가 우상화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 북한에서 최근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일성 우상화하는 대표적 표현인 '태양' 수식을 떼어내기 시작한 겁니다.

우선 김일성의 생일을 부르는 '태양절'이란 표현이 사라지고 '4·15' 또는 '4월 명절'로 대체됐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 3년 후인 1997년 '태양절'을 제정해 가장 큰 명절로 기념해 왔습니다. 북한은 도심에 유독 선전물이 많은데 여기에도 '태양절' 대신 '4·15' 또는 '4월 명절'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통일부도 북한이 김일성 생일 공식 명칭을 '태양절'에서 '4·15' 또는 '4월 명절'로 변경한 것으로 잠정 평가했습니다.

김일성 우상화를 축소하는 정황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14일 보도에서는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태양의 성지' 대신 '애국의 성지'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올해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평양 시내 선전물

■ 선대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김정은 …'홀로서기' 의미는?

이 같은 변화의 의도에 대해 북한이 직접 밝힌 건 없지만 선대에 대한 신격화 강도는 줄이는 건 명확합니다. 대신 우상화의 초점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맞추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는 겁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올해 초 통일 정책을 폐기한 것을 언급하며 "선대의 지도자들과 정책적 계승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정책적 단절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김정은의 모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선대를 과장해서 부각하기보다는 자기 시대에 맞는 정책 환경을 마련하는 의미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간 북한의 통치는 어느 정도 선대의 유훈과 지도 이념을 따라가는 일정한 경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김정은이 그 경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이에 따라 북한의 대외정책에 대한 예측도 한층 더 복잡해졌습니다. 달라지는 북한에 맞춰 보다 더 유연하고 정밀한 남한의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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