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만 있다면…” 시베리아에서 10년, 대문호를 만들다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도스토옙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라던 비평가 니콜라이 베르댜예프의 말처럼,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문학 전체를 대표하는 대문호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 사상가, 철학자, 종교인, 심지어 예언가로 칭송받는다. 그의 작품은 감정적·사상적인 플롯 라인을 가진 소설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는 철학과 사상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1849년 4월 23일 새벽 4시, 도스토옙스키 집 대문 앞이 소란하다. 그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파열음 때문이다. 1846년 출간한 『가난한 사람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스물여덟의 젊은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사회개혁을 염원하는 혁명적 지식인 즉 인텔리겐차들의 모임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가입한다. 클럽에서 동지들을 대상으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는데 이 짧은 유희가 문제였다. 이것이 당시 황제였던 니콜라이 1세에 대한 반역행위로 간주 되었고, 결국 정치범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편지 한편 낭독한 죄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소설 『죄와 벌』에 사형 당시 심정 그려
그런데 사형수들을 향한 총구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황제의 특사가 도착하고 거짓말처럼 사형 정지 명령이 떨어진다. 민중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자신의 관대함을 과시하려는 니콜라이 1세의 ‘정치 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옴스크 노동 감옥에서 4년, 근교 도시에서 무기한 유형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6년 만에 사면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10여년이란 시간을 시베리아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가짜 처형극’은 도스토옙스키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간질로 고생하던 그의 육체는 더욱 쇠약해진다.
시베리아 유형 즉 ‘죽음의 집에서의 경험’은 개인에게는 무거운 형벌이요 고통이었으나, 예술적 차원에서는 위대한 작가로 태어나기 위한 산고의 세월이었다. 철학적 차원에서는 민중과 러시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기회였고, 종교적 차원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던 어린 양이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었다.
이 작품의 화자인 고랸치코프의 말을 인용하자면 “범죄라고 불리는 것 중에서 여기에 그 대표로 와 있지 않은 것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인 그런 곳에서 극도로 섬세한 신경을 가진 젊은 도스토옙스키는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작가는 밀수꾼, 화폐 위조자, 어린이 강간범, 부친 살해범, 강도는 물론 자신과 같이 억울하게 수감된 사람들도 만난다. 거기서 작가는 인간 본성의 어둡고 야만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 심연에 있는 선과 악의 카오스와 악마적 요소의 우세를 보고 난 후, 작가가 신념으로 받아들였던 ‘본성적인 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건 더 이상 불가능했다. 시베리아는 작가에게 악을 그것도 추상적인 원리가 아닌, 매일매일 한 사람 한 사람 실제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악과 대면시켰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악이 바로 『죽음의 집의 기록』에 등장하는 소령이다. ‘죽음의 집’에 사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황제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그는, 윗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비굴하지만 정작 자신이 돌봐야 할 ‘불행한 죄수’들에게는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며 힘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제복이 주는 권력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소령이기에 그에게서 제복 즉 권력을 빼앗으면, 그 안에는 텅 빈 ‘투명 인간(hollow man)’만 남게 된다. 화자는 제복을 빼앗긴 소령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제복을 입은 그는 천둥이자 신이었지만, 외투를 입은 그는 갑자기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마치 하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제복이란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놀라운 일이다.”
이들은 진정한 법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건전한 분별력과 냉철한 이해력도 없다. 이들에게 제복은 그저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실현해줄 최상의 도구일 뿐이다. 제복이란 존재 자체가 소속감과 일치감, 책임감과 사명감, 자부심과 긍지를 부여하는 동시에 외부 또는 타인과 구별되는 ‘차별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제복의 순기능은 외면하고 차별의 기능만 취사선택한 소령의 무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1989년 발표한 논문 ‘현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Holocaust)’를 통해 ‘제복을 입은 투명 인간의 무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제복을 벗을 때마다 그들은 악마가 아님이 곧 밝혀졌다. 그들은 아내를 사랑했고 아이들을 귀여워했으며 비탄에 빠진 친구를 위로하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일단 제복을 입으면 수많은 사람을 총으로 쏘거나 가스실로 보냈다. (…)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폭도의 작품이 아니라 규칙을 준수하고 복종하는, 규율 잡힌 제복을 입은 자들의 작품이었다.”
“제복 입으면 신, 벗으면 하인이 되었다”
선장이 제복을 벗은 이유는 구조 순위에서 밀릴 게 두려워서다. 해양경찰이 퇴선을 허락하지 않고 ‘배에 남으라’는 명령을 내릴 게 무서워서다. 제복을 벗어 던진 선장은 사복을 찾을 시간도 없이 팬티 바람으로 구조자들 틈에 숨어들었고, 구조기록지에도 자신을 일반인으로 표기했다. 그들이 제복의 무게를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지했다면 그토록 참혹한 인재(人災)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참사 10년, 누군가에게는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시간일 테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그 시간,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벌써 10년 전 일이냐’ ‘세월 참 빠르다’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언제적 이야기를 아직까지 꺼내느냐’라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흐르고 기억은 저마다 다르게 적힌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시베리아 10년 유형이 도스토옙스키를 위대한 작가로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의 세월이었듯, 세월호 참사 10년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시작의 기록’이자 ‘트라우마를 극복한 희망의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든 단지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냉기 가득한 어둠의 터널을 지나 뜨거운 생의 한가운데로 되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