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한국표 순한 맛’ 선호… 지식재산권 확보는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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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17. 오후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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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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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20]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는 “막장 드라마는 만들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선한 영향력이 있는 작품을 만들려 한다”고 했다. 에이스토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따뜻한 드라마로 해외까지 사로잡았다. /이태경 기자

드라마 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책장엔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의 대본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중국 OTT에서 조회 수 1억을 넘고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시그널’, 한국 최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제목만 훑어봐도 K드라마의 영토 확장사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난해 종영한 에이스토리의 드라마 ‘유괴의 날’은 영국판으로 제작된다. 어설픈 유괴범이 천재 소녀를 납치하려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코믹 스릴러.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드라마를 재밌게 본 영국 작가가 먼저 제안해왔고, 한국 프로듀서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제작에 돌입했다.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지 제작사와 합작해 배급과 부가 사업에 따른 수익까지 공유하는 방식으로 K드라마의 새로운 수익 모델을 보여줬다.

드라마 '유괴의 날' /ENA

최근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는 “이젠 한국 시장만으로는 치솟은 드라마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해외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드라마를 만드는 게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죠. 이제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해외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미국판은 대여섯 회사가 경합한 끝에 리메이크할 제작사와 방영 플랫폼을 확정한 상태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에서 7주 연속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영우 신드롬’을 일으켰고, 독일·일본·중국·튀르키예 등 10여 국에서 리메이크 제안이 쏟아졌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킹덤’이나 ‘오징어 게임’에 비하면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드라마가 어떻게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을까. “드라마의 문을 열자마자 일단 손님이 들어오게끔 해야 하거든요. 우영우의 귀엽고 독특한 캐릭터가 호기심을 끄는 역할을 했고, 막상 들어와 보니 전 세계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에피소드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에 푹 빠진 게 아닐까요.”

넷플릭스에 지식재산권(IP)을 넘긴 ‘오징어 게임’과 달리, 에이스토리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거절하고 ‘우영우’를 신생 채널인 ENA에서 방영하면서 IP를 확보해 선례를 남겼다. ‘시그널’과 ‘킹덤’을 만들면서 IP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이 없으면 제작사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해요. 기업은 수명이 오래될수록 쌓이는 게 있어야 하는데, 방송사나 OTT에 계속 IP를 넘겨주면 껍데기만 남죠. 회사의 가치를 높이려면 IP 확보가 필수였어요.”

지난 8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 콘텐츠 마켓 ‘MIPTV 2024’에서 개최된 드라마 '유괴의 날' 쇼케이스. 이상백 대표(왼쪽에서 둘째)가 '유괴의 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에이스토리

2004년 설립된 에이스토리는 tvN 개국 드라마 ‘하이에나’, 일본의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에 선판매된 ‘에어시티’, 중국 OTT 텐센트 비디오에 수출된 ‘시그널’, 넷플릭스 최초 한국 오리지널 ‘킹덤’ 등을 만들어왔다. “KT의 투자를 받아 ‘우영우’를 만들 때도, 지상파들은 드라마 제작비를 줄이고 있었거든요. 미국의 통신사 AT&T가 미디어를 갖고 있듯이, 통신사의 자본이 드라마 산업으로 흘러 들어오면 좋겠다 싶었죠. 남들이 하지 않았던 방식의 사업 모델을 만들거나, 드라마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고 애썼어요.”

K콘텐츠의 황금기와 동시에 위기가 닥쳤다. 제작비 급등과 광고 시장 침체로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성을 대폭 줄이면서 업계가 침체에 빠졌다. 이 대표는 “그래도 대한민국 산업 중에서 일본·중국보다 압도적으로 앞선 분야는 많지 않다. KBS·MBC만이라도 드라마 편성을 줄이지 않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영우 김밥 덕분에 김 수출액이 증가한 사례를 들며 “드라마는 한국의 제품들이 노출되는 광고판과도 같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해외에서 사랑받는 K콘텐츠의 비결로는 한국적인 색깔을 강조했다. “미국·유럽에 비하면 자극적이지 않고, 가족끼리도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까지도 확산할 수 있었죠. 할리우드와 비슷한 이야기로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요.” 다음 달 공개되는 ENA 드라마 ‘크래시’에선 드라마 최초로 교통 범죄를 다룬다. “해외에선 제작비 회수를 위해 시즌제로 만들 수 있는 의학·법조·수사물을 좋아하더라고요. 나라별 교통 범죄 수사물로 리메이크를 노리고 있습니다.”

☞에이스토리

2004년 설립된 드라마 제작사. tvN 개국 드라마 ‘하이에나’를 시작으로 ‘시그널’ ‘킹덤’ 등 드라마 40여 편을 만들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미국에서, ‘유괴의 날’은 영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등 글로벌 제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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