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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 타내려 수술에 흉터치료제 … 임대료 부담에 비급여 목매"

유준호 기자
입력 : 
2024-04-16 18:01:03
수정 : 
2024-04-17 14: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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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항목 '꼼수진료' 활개
강남 역세권 소형 병원도
임대료·광고비 月 수천만원
일부 병원 도덕적 해이 심각
용도 안맞는 비싼 진료 강요
"의사 선의에 기댄 제도 잘못
비급여 가격 상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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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의료보험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 부실과 도덕적 해이는 보험금 누수에만 그치지 않고 필수의료 부족을 유발하는 의료시장 왜곡과 선량한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 등이 큰 문제로 지적돼왔다.

특히 일부 병·의원에서는 실손보험금을 타내려고 갖가지 꼼수를 쓰고 있고, 이는 부작용과 시장 왜곡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흉터 치료제로 출시된 제품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 '주적응증(효능대상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 수술에 쓰는 행태까지 벌이고 있다고 고발된 사례도 있다.

정부가 수술에서 사용되는 점막 유착 방지제를 선별급여 항목으로 선정해 재료 비용을 원가 이상으로 받지 못하게 묶어 놓자, 비급여 항목(국민건강보험 적용 제외) 청구가 가능한 '피부 전용' 제품을 수술에 활용해 실손보험금을 타내는 식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감시를 받으며 보험금을 받게 돼 이른바 꼼수를 쓰기 어렵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관리하지 않는 비급여는 보험사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단도 거의 없어 의료기관이 꼼수로 실손보험금을 타내기 쉬운 구조다.

보험 재정 고갈이나 의료비 상승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고 의료 활동 기간 최대 수익을 목표로 하는 행태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역세권 등 소위 '목 좋은 자리'에 병원이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데다, 막대한 광고비 지출까지 더해지면서 각 병·의원이 비급여 수익으로 이를 보전하는 구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수도권 개원의 A씨는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과 관련된 비윤리적 진료에 대한 폭로도 이어갔다. 의사들이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선별급여 항목(치료 효과성 또는 비용 효과성이 불확실한 경우 본인 부담률을 높여 급여화하는 제도)을 대신해 용도에 맞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환자 치료에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A씨는 "선별급여 재료인 메디커튼이라는 점막 유착 방지제가 있는데 일부 의원에서는 피부전용으로 나온 써지콘이라는 제품을 사용한다"며 "선별급여 재료 사용 시 수익이 10원도 나지 않으니, 써지콘을 수술에 끌어다 쓰는 비윤리적 행위가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써지콘 공급가는 3만원대다. 매일경제가 확인한 결과 병·의원들은 써지콘 1.2g에 15만원까지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다만 보건당국은 이 같은 행위가 불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 비용은 환자의 개별 질환에 따라 의사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급여 항목과 달리 현행법상 의사가 비급여 의약품을 허가 사항 외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는 상태다.

불법은 아니더라도 비윤리적 행위라는 것이 전문의 A씨의 판단이다. 그는 "써지콘은 피부 병변에 사용하라고 명시돼 있는데, 이는 점막 수술 부위에는 임상시험이 안 돼 있다는 의미"라며 "급여 재료보다 임상적 우위성도 전혀 입증되지 않은 상태로 아무런 의학적 근거 없이 수익 창출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도 "일부 병·의원에서 선별급여가 적용되는 제품을 대신해 가격이 비싼 비급여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불법 여부를 떠나 환자에게 주적응증에 맞지 않게 비급여 의약품을 권하는 병·의원의 돈벌이 행태는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전했다.

병·의원의 과잉 진료에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지급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메리츠화재·DB손해보험·KB손해보험·현대해상)가 지급한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은 지난해 5조3749억원으로 2019년 4조2868억원 대비 1조원 이상 늘었다. 물리치료와 비급여주사제, 발달지연 등에 대한 비급여 보험금 지급이 특히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A씨는 개원의들이 비급여 항목으로 폭리를 취하는 원인에 대해 개원가의 비용 구조를 짚었다. 개원의들이 개인사업자로만 활동하는 까닭에 입지 좋은 곳에 들어서야 병·의원 수익이 유지되고, 실손보험의 비급여가 이를 메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매일경제가 서울 강남권 내 여러 공인중개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강남구를 기준으로 통상 병·의원이 들어서는 임대 물건의 3.3㎡(약 1평)당 평균 월세는 20만~30만원이다. 132㎡(약 40평) 규모의 소형 의원을 운영하더라도 한 달에 월세 지출만 12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통상 월세의 10~12배의 보증금이 따라붙는다. 강남권역 B공인중개사는 "일반 사무실과 달리 병원은 환자가 찾아오기 쉽도록 입지를 많이 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제한 없이 광고를 허용해 노출이 많은 의원에게 환자가 많이 몰리는 병·의원 사업 구조 역시 A씨가 꼽는 문제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일부 병·의원에서는 광고비를 한 달에 2000만~3000만원 쏟아붓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A씨는 "외국 사례를 보면 역세권 사거리에 의원이 이렇게 많이 분포돼 있지 않고, 우리나라 의원처럼 곳곳에 광고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 개원의가 살아남으려면 많은 부동산·마케팅 비용을 쏟아야 하는데, 이를 비급여 수익으로 보전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평가했다.

A씨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제기했다. 정부가 실손보험제도 도입 초기에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보건의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 쪽에는 성선설보다 성악설을 전제로 좀 더 엄격한 규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이번 의료개혁 과정에서도 비급여 가격 상한선을 도입하는 등 정부의 정책 실패를 수정해 의사가 경영보다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A씨는 "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의대를 지원할 때는 안정적인 수입을 노리고 진학하는 사례가 분명히 있다"며 "잘못 설계된 제도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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