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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품질 결함·납기 지연' 중국 저가 철도차량 계약 취소

4년 동안 1량도 납품 못해…전문가들 "한국 역시 제도적 장벽 세워야"

조택영 기자 | cty@newsprime.co.kr | 2024.04.15 16:50:24
[프라임경제] 미국이 중국의 국영 철도차량 제조업체 CRRC(중국중차)와 맺은 철도차량 도입 계약을 전면 철회했다. 잦은 결함 발생에 따라 납기가 4년이 지나도록 단 1량도 납품하지 못한 데다, 현지에서 터무니없는 입찰가격 덤핑으로 자국 철도시장은 물론 안보까지 교란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졌기 때문이다.

15일 미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시각) 펜실베니아 주 남동부 교통당국(SEPTA)은 지난 2017년에 CRRC와 맺은 1억8500만달러(약 2560억원) 규모의 2층 전동차 45량 도입 사업 계약을 취소했다.

핵심 사유는 품질 문제와 그로 인한 지속적인 납기 지연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예정보다 이미 약 4년 정도 지연된 상태로 초도 물량조차 납품되지 않았다. 이미 프로젝트에 지출된 5000만달러(약 692억원) 이상의 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도 논의 중이다.  

당국은 이미 지난 2022년 1월에 생산 중인 CRRC 차량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CRRC 차량의 내부 패널·전기 배선, 안전과 직결된 비상구 창문 등에 결함이 발견됐으며 제동장치 시험에서도 반복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당국의 사업 제동으로 미국 현지에서 커지고 있는 저가 중국산 철도차량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실제 CRRC는 막대한 자국 보조금을 앞세워 미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초저가(超低價) 응찰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이번에 취소된 계약 건 역시 CRRC가 경쟁사인 캐나다 봄바르디어(Bombardier)보다 3400만 달러나 낮은 가격을 써내 논란이 일었던 사업이었다. 

CRRC가 지난 2014년에 수주한 보스턴 매사추세츠만 교통공사(MBTA) 전동차 404량(오렌지 라인 152량·레드 라인 252량) 사업은 △탈선 △부품 누락 △제동 장치 조립 불량 △배선 불량 △배터리 폭발 △차량 시험 지연 △코로나19 조립 라인 지연 등으로 첫 차량 출고가 예정보다 7개월 늦은 2019년 8월에야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교통부 감사관실은 CRRC가 '바이아메리카 법(Buy America Act)'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규정은 외국 기업이 제작하는 철도차량은 부품 70% 이상이 미국산이어야 하고, 최종 조립도 미국에서 완료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지난 2019년 12월 미국 상‧하원 군사위원회는 '국방법안(NDAA‧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절충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국가 보조금을 사용해 저가 공세로 시장을 교란하는 중국 기업들이 자국 내 교통 산업 조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중국 제품이 미국의 주요 인프라와 경제, 군사 등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치고 있다는 이유인데, 제재 기업 명단에는 CRRC가 포함됐다.   

미국의 사례처럼 국내도 중국산 철도차량처럼 무분별한 해외 업체의 입찰 참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내에서도 해외 업체의 시장 교란을 차단할 국산화 부품 사용 조건을 두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포함한 국내 주요 철도차량 발주처들은 최소한의 기술 점수만 넘기면 최저가 응찰 기업이 사업을 수주해 사실상 최저가 입찰제도라 불리는 '2단계 규격‧가격 분리 동시 입찰제'를 대부분 활용하고 있다. 아무런 규제 없이 국제 경쟁 입찰을 실시하는 국내 철도차량 조달시장의 취약성을 외면하는 셈이다.

반면 유럽은 자체 규격 규정인 'TSI(Technical Specifications for Interoperability)'라는 규제 장벽을 두고 있다. 

TSI는 유럽 내 운영되는 철도의 상호 호환성을 만족하기 위한 요건들을 정한 것으로 △설계 △건설 △개량 △개조 △운영·유지관리 △안전 요건 등은 물론 차량에 들어가는 세부 부품 규격까지 포함돼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튀르키예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非) EU 국가들도 TSI 만족을 요구하고 있다.  

스페인 역시 자국에서 발주한 철도차량 사업에 해외 업체가 참여하려면 전문성이나 무역 관련 요구 사항 등 전문 제작 활동을 위한 적합성 여부를 종합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세부 기술사양서를 공개하지 않아 어떤 식으로 평가를 받는 지 정보 획득이 어렵다. 이는 폐쇄적인 철도차량 시장 구조로 일본도 마찬가지다.  

실제 CRRC는 지난 3월 불가리아 철도차량 유지보수 입찰 사업 참여 계획을 철회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내수 시장을 왜곡하는 수준의 역외보조금을 받아 해당 사업에 지나치게 낮은 응찰가를 제시했다는 의혹으로 CRRC에 대한 '역외보조금규정(FSR)' 심층 조사를 지난 2월 착수한 바 있다.  

이는 지난해 7월부터 2억5000만유로(약 3685억원) 이상의 입찰에 대해 최근 3년 동안 최소 400만유로(약 58억원)의 해외 재정 지원을 받은 업체가 참여를 원한다면 스스로 EU 집행위원회에 해당 사실을 통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도입한 덕분에 가능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은 철도차량 입찰 참여 시 자국법인과의 공동응찰을 의무화한 것을 비롯해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의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국가기간산업인데다 안보와도 직결된 핵심 교통수단인 철도산업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장벽 세우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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