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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네론, 플랫폼 기반 독자 성장 모델의 대표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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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억 크로스포인트테라퓨틱스 대표

1988년 창업한 리제네론은 설립 36년 만에 시가총액 1102억 달러의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했다. 바이오파마 기업으로는 세 번째, 전체 제약기업으로는 열여섯 번째로 시가총액이 높다. 지난해 매출은 131억 달러, 영업이익률은 38%를 기록한 알짜기업이다. 리제네론이 출시한 신약으로는 지난해 매출 116억 달러를 기록한 항체신약 듀피젠트(Dupixent)와 매출 50억 달러를 올린 아일리아(Eylea) 등 총 11개 제품이 있다.


빅파마로 성장시킨 항체 플랫폼
리제네론은 30개 이상의 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의 대다수는 T세포 인게이저(T cell engager)이거나 항체를 기반으로 면역항암 공동자극인자(co-stimulatory)
타깃을 공략하는 데 집중돼 있다.

리제네론은 완전 인간항체 발현시스템을 기반으로 이중항체, 완전 인간화 T세포 수용체 등 7개로 구성된 벨로시슈트(VelociSuite)라는 항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적 기반이 매우 튼튼한 항체신약의 명가다.

과학적 기반이 매우 튼튼한 항체신약의 명가인 리제네론은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빅파마와 중장기 공동연구를 통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다수의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보유하는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빅파마가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것과 달리 플랫폼 기반의 독자성장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2020년 이후부터 안정적 매출 확대를 위해 데시벨테라퓨틱스(Decibel Thera
peutics)와 체크메이트파마슈타걸스(Checkmate Pharmaceuticals)를 인수했다. 이와 동시에 인텔리아(Intellia)와는 유전자편집 신약을, 앨나일람(Alnylam)과는 핵산신약 개발을 위한 협력을 진행하는 등 차세대 모달리티 개발경쟁에 나서고 있다.

리제네론은 2014년에 설립한 리제네론 유전학센터(Regeneron Genetics Center)를 차세대 신약개발 경쟁력의 원천으로 활용하고 있다. 리제네론의 최고경영자(CEO) 슐라이퍼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인공지능(AI)은 도구에 불과할 뿐 진짜 중요한 신약개발 경쟁력은 질병과 유전자와의 상관관계 규명을 통해 신규 타깃을 발굴하는 것”이라며 “유전자치료제 개발을 위해 신규 타깃 발굴, 해당 타깃을 적절히 공략할 수 있는 신규 모달리티 등의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리제네론의 성장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롤러코스터 같았다. 리제네론은 4명의 노벨상 수상자로 구성된 화려한 과학자문위를 꾸렸고 단 4년 만에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또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바이오텍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주력 파이프라인 3개가 대규모 임상 3상에서 연이어 실패하면서 1995년 전후에는 존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게다가 2008년 아일리아 출시 이전까지 창업 후 20년간 시판 허가를 받은 제품이 없었다.

리제네론의 모태가 된 NGF, BDNF, CNTF를 타깃한 신경계질환 치료제는 세 차례 이상 연속해서 임상에 실패했다. 이 여파로 회사는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인간화 항체 플랫폼 기술과 사이토카인 디코이 리셉터인 트랩(Trap) 기술을 기반으로 기사회생했고, 항체신약의 명가로 변신했다.

리제네론은 이들 2개의 플랫폼을 이용해 사노피와의 장기 공동연구 협력으로 창업 15년 만인 2013년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이후 연속해서 아토피 치료제인 듀피젠트와 심혈관 치료제인 프랄런트(Praluent), 면역항암제 리브타요(Libtayo)를 출시하면서 2020년 매출 10조 원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리제네론의 창업
리제네론은 1988년 웨일 코넬(Weill Cornell) 의과대학의 신경과 교수 레너드 슐라이퍼(Leonard Schleifer)가 신경영양성 인자(Neurotrophic Factors)를 갖고 메릴린치벤처(Merrill Lynch Venture)로부터 100만 달러를 투자받아서 설립됐다.

회사 이름이 리제네론(Regeneron)으로 정해진 것도 뉴런 재생(regenerating neurons)이라는 개발목표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경질환은 치료제가 없는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해당 분야 치료제 개발을 위해 창업된 20여 개의 바이오텍이 약 10억 달러 내외를 투자받는 등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였다.

슐라이퍼는 이후 노벨상 수상자가 된 앨프리드 길먼(Alfred Gilman), 신경세포의 분화와 성장과 관련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에릭 슈터(Eric Shooter), 1959년 노벨상 수상자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 1985년 노벨 수상자 조지프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1985년 노벨 공동수상자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등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5명의 과학자문위를 구성했다.

그야말로 미국 바이오텍 중 가장 화려한 과학자문위를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600만 달러의 투자를 추가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문제는 연구팀 구성과 이를 이끌어갈 최적, 최고의 연구소장을 구하는 일이었다.

리제네론 자문위는 당시 28세인 컬럼비아대학의 젊은 교수인 그리스인 출신 조지 얀코풀로스(George Yancopoulos)를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추천했다. 당시 얀코풀로스는 프레데릭 알트(Frederick Alt) 박사와 함께 인간 면역유전자를 마우스에 삽입해 인간 면역시스템을 발현하는 연구를 주도하고 있었고(이 기술은 앱제닉스(Abgenix), 메다렉스(Medarex)에 기술이전됐다), 정부연구비로 8년간 250만 달러를 확보한 촉망받는 연구자였다.

당시 얀코풀로스의 연봉은 3만5000달러에 불과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박봉의 교수보다는 같은 그리스 출신 사업가인 미국 MSD의 로이 바젤로스(Roy Vagelos)와 같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했으며,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 마땅할 만큼의 연구업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소망에 덧붙여 슐라이퍼가 약속했던 과학 중심의 기업운영 원칙에 설득된 얀코풀로스는 같은 연구실의 동료 및 후배들에게 같이 합류할 것을 권유했지만 아무도 동참하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바이오텍이라는 단어는 연구자들에게 ‘더러운 단어’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리제네론의 기라성 같은 과학자문위와 풍부한 초기 투자금에도 불구하고 연구원 모집은 쉽지 않았다. 1985년 이후 나스닥 시장에 한파가 거세게 몰아쳤고, 상장에 성공한 바이오텍 역시 거의 없었다. 당시 창업한 항체 기반 회사들은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별다른 성과를 입증하지 못했는데, 그 결과로 바이오텍들이 제시했던 과장된 광고(over hype)에 대한 투자자들과 연구자들의 냉소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영향으로 리제네론이 초기 연구팀 구성을 완료하는 데 2년이 소요됐다. 당시 얀코풀로스가 채용한 연구원들은 학계나 산업계에 잘 적응하지는 못했으나 연구실력만큼은 뛰어난 공포의 외인구단급이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리제네론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 당시 슐라이퍼와 얀코풀로스는 리제네론의 핵심가치로 5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과학이 비즈니스를 이끌고, 열정이 사이언스를 이끈다. 둘째, 우리는 선택된 팀이다. 셋째, 우리는 매일매일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넷째, 이건 과거에 우리가 늘 했던 것이라는 태도를 버려라. 다섯째, 좋은 아이디어를 막는 관료주의를 제거하라.

이러한 5대 원칙은 지난 30년을 경과하면서 “과학이 선도하며, 과감한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그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만들고, 그 결과 모든 구성원이 위대해질 수 있도록 제대로 일하자”는 리제네론의 핵심가치로 발전했다.

2020년 이후에는 ‘과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과감한 혁신’을 가장 상위의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리제네론은 과학적 연구가 기업성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는 원칙에 충실했으며, 신경세포성장인자 중심의 임상이 연속 실패한 후 1996년 항체 기반 플랫폼 회사로 전환했을 때에도 이러한 원칙은 여전히 유지됐다.
시련만 남겨준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제
리제네론이 집중했던 신경세포성장인자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은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 뉴로트로핀-3(NeuroTrophin-3, NT-3), 섬모신경영양인자(Ciliary NeuroTrophic Factor, CNTF)가 중심이었다. 당시 해당 분야의 경쟁자는 제넨텍, 시너젠(Synergen), 셀팔론(Celphalon) 등이었는데 리제네론의 개발 속도가 가장 빨랐다.

리제네론은 창업 2년째인 1990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NT-3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일본 스미토모(Sumitomo)로부터 1500만 달러 규모의 공동연구 계약, 암젠과는 1억 달러 규모의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리제네론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기반으로 1990년부터 1년에 한 개씩 3개의 파이프라인을 임상에 진입시켰다.

창업 4년 만인 1992년에는 3개의 임상 파이프라인을 근거로 나스닥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리제네론의 시가총액은 1억5000만 달러, 주당 가격 22달러에 9160만 달러가 조달됐다. 리제네론 시드 투자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던 메릴린치는 상장 시점 지분이 23.8%로 당시 주가 기준 약 50배의 투자수익을 거둬들였다.

대규모 자금조달에 성공한 리제네론은 1993년 CNTF 임상 성공을 자신하며 생산공장을 설립했다(이 공장은 2011년 아일리아 승인 때까지 위탁개발생산(CDMO)으로 활용되다가 아일리아 생산을 전담하게 된다).

하지만 창업 4년 만의 나스닥 상장과 2개의 추가 임상 진입에 성공했던 리제네론은 1994년 임상 3상 실패를 겪으며 결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994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환자 720명을 대상으로 한 CNTF 임상 3상은 체중감소 등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했다. 주가는 상장가인 22달러에서 4달러까지 급락했다.

1997년에는 1000명의 ALS 환자 대상 BDNF 임상 3상 역시 효능 입증에 실패했다. 게다가 2003년에는 CNTF 임상에서 확인된 체중감소 부작용에 착안해서 CNTF를 비만 치료제로 개발하려던 2000명 대상 비만 치료제 3상 역시 중단됐다.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으나 경쟁약물로 개발 중인 경구형 비만 치료제 대비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10년간 3개 파이프라인이 임상시험 최종단계에서 연속 실패하면서 리제네론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



리제네론의 위기와 부활
리제네론의 대표인 슐라이퍼는 1995년 ALS 임상 3상 실패로 위기에 직면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당시 MSD의 대표이사에서 퇴임한 제약업계의 전설 로이 바젤로스(Roy Vagelos)를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했다.

바젤로스 영입 소식에 주가 역시 긍정적으로 화답했으며, 투자자들 역시 새롭게 리제네론의 미래를 신뢰하게 됐다. 바젤로스는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리제네론의 성장을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임상을 통해서만 개발하고 있는 약물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해당 약물에 투자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약물 개발에 착수하기 이전에 타깃 질환에 대한 바이올로지(biology)와 사용하는 모달리티가 가진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둘째, 개발하려는 약물의 임상실패 원인을 예상하거나 분석하지 않은 채 초기 약물 개발에 착수하지 말아야 하며, 초기 개발 단계부터 목표 제품 특성(Target Product Profile)을 충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의 증거(Proof of Concept) 실험, 혹은 증명을 위한 결정적인 실험(Killer Experiment)을 설계해야 한다.

셋째, 재무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과학과 데이터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바젤로스가 제시한 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원칙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당시 리제네론이 더 이상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포기해야 할 것은 명확했다. 그렇다면 리제네론의 방향전환은 어디에서 시작돼야 했을까.
항체 플랫폼 명가로 재탄생
많은 사람이 리제네론의 기사회생에 바젤로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바젤로스의 이사회 합류로 리제네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반전될 수 있었지만, 부활은 얀코풀로스가 만들어냈다. 그가 개발했던 디코이 리셉터 기반의 트랩 기술과 유전자조작 마우스를 통한 인간항체 플랫폼 기술이 없었다면, 리제네론의 부활은 불가능했다.

얀코풀로스는 1996년부터 새로운 신경세포 성장인자를 발굴하기 위해 강한 결합력을 가진 리셉터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할 경우 신경세포 관련 성장인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이토카인을 발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리셉터를 이용해서 특정 성장인자나 사이토카인에 강하게 바인딩해서 리셉터와 리간드의 결합을 차단하는 디코이 트랩(Decoy Trap) 개념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을 기반으로 얀코풀로스는 항체보다 높은 결합력을 가진 리셉터 2개를 항체의 Fc 부위에 접합시킨 퓨전 단백질(Fusion Protein) 치료제로 IL-1을 타깃한 아르칼리스트(Arcalyst)를 2008년에, VEGF를 타깃한 연령 관련 황반변성(AMD) 치료제 아일리아(Eylea)를 2011년에, 그리고 아일리아와 동일물질을 사용한 전이성 대장암 치료제 잘트랩(Zaltrap)을 2012년에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리제네론은 새롭게 발굴된 디코이 트랩 시스템을 기반으로 2003년 노바티스와 IL-1 트랩관련 공동연구로 선수금 2700만 달러와 전략적 투자 48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노바티스는 아일리아 임상 2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2009년 해당 계약을 해지했다).

또 VEGF 트랩으로는 아벤티스(Aventis)와 2007년에 8000만 달러 선수금, 4500만 달러 주식매입, 2500만 달러 마일스톤 지급으로 구성된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개발에 성공할 경우 수익은 5 대 5로 배분하는 내용이었다(그러나 2004년 아벤티스를 인수한 사노피는 안구 질환이 전략적 대상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계약을 해지했다).

리제네론은 Trap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체결된 2건의 공동연구를 통해 조달한 금액으로 연간 연구개발 비용의 절반 이상을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아르칼리스트는 2008년에 출시돼 연간 매출액 2000억 달러를, 2011년에는 아일리아를 출시해서 첫해 매출액 9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2013년에는 마침내 13억 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두 번째 항체 플랫폼이자 리제네론을 항체의 명가로 만들어준 완전 인간항체 발현 플랫폼 기술은 대량의 유전자 변이를 도입, 발현시킬 수 있는 벨로시진(Velocigene)을 2003년에 개발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곧이어 2007년 유전자변형 마우스를 이용해서 인 비보(in vivo)로 완전 인간화 항체를 발현할 수 있는 벨로시이뮨(Velocimmune), 벨로시맵(VelociMab) 등으로 구성된 풀패키지 플랫폼 벨로시슈트(VelociSuite)를 완성했다.



이들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리제네론은 2007년 2월 벨로시슈트를 아스트라제네카가 내부적으로 개발하는 항체에 비독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는 선급금 2000만 달러에 매년 2000만 달러를 리제네론에게 5년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2006년에 완전 인간화 항체 파지 디스플레이(Phage Display) 기술을 개발한 케임브리지 안티바디테크놀로지(Cambridge Antibody Technology)를 13억 달러에 인수했음에도 리제네론의 벨로시이뮨 기술이 가진 상대적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리제네론과 협력한 것이다.

곧이어 2007년 3월에는 일본 아스텔라스(Astellas)와 벨로시이뮨 기술을 아스텔라스 자체 항체신약 발굴에 비독점적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으로 선급금 2000만 달러, 4년간 매년 2000만 달러를 마일스톤 방식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이 계약은 2010년에 1억6500만 달러 선급금 지급에 2018년까지 마일스톤 지급액 1억3000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비독점 라이선싱 기간을 2023년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2007년 11월에는 리제네론의 본격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했던 파트너 사노피와의 독점적 공동연구 계약이 체결된다. 공동연구의 핵심 내용은 벨로시슈트를 통해 사노피가 지정하는 타깃 항체신약을 각각 50 대 50의 비율로 투자해서 공동개발하되, 사노피가 리제네론의 공동연구 비용을 선지불하고 해당 파이프라인이 시판에 성공할 경우 사노피가 선지불한 분담 비용을 리제네론이 환불해주는 조건이었다(미국 내 판권은 50 대 50, 기타 국가들에 대해서는 사노피가 55~65%의 권리를 보유하는 조건이었다).

이 계약을 위해 사노피는 리제네론에 8500만 달러의 선급금과 5년간 총 4억7500만 달러의 연구자금을 지원하고, 동시에 리제네론 주식 4~19%를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리제네론은 벨로시슈트를 통해 3개 빅파마와의 공동연구 계약으로 2007~2011년 총 16억 달러를, 그리고 2012~2017년 총 10억 달러를 공동연구 파트너로부터 조달했다. 이렇게 공동연구 계약을 통해 확보한 26억 달러는 리제네론이 투자한 연구개발비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이처럼 파트너사와의 공동연구는 장기간의 계약을 통해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리제네론이 12개 이상의 안정적이고 꾸준한 자체임상 파이프라인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리제네론 독자 성장의 비결
리제네론이 독자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플랫폼 기술의 중요성과 이를 활용한 독점적 방식의 중장기 공동연구 파트너십 확보다.

당시 완전 인간항체 기술로는 1990년 파지 디스플레이 기술(대표기업: 다이악스(Dyax), 케임브리지 안티바디테크놀로지), 1994년 휴맵(Humab) 기술을 기반으로 형질전환 마우스(Transgenic Mouse) 기반 항체 플랫폼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다. 유전자조작 마우스 항체 플랫폼 기술을 가진 기업은 메다렉스(얼티맵(Ultimab) 플랫폼)와 앱제닉스
(제노마우스(Xenomouse) 플랫폼), 그리고 리제네론(벨로시이뮨 플랫폼)이 대표적이었다.

항체신약 시장의 발전에 있어서 완전 인간화 항체 플랫폼 기술이 가지는 중요성은 너무나 명백했다. 1980년 수많은 항체 기반 바이오텍이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창업하거나 나스닥에 상장했지만, 마우스 유래 항체의 면역원성을 해결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항체기술의 중심은 키메릭 항체, 인간화 항체 등 면역원성 극복을 위한 다수의 플랫폼 기술개발에 집중됐다. 항체신약 시장의 본격적 개화는 파지 디스플레이 기술과 유전자조작 마우스 항체 플랫폼 기술이 완성되면서 시작됐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16년 동안 9개의 항체신약이 출시돼 54억 달러 시장을 형성한 것에 비해 2002년부터 2012년 사이에는 20개의 항체신약이 출시돼 총 5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완전 인간화 항체 플랫폼 기술에 대한 빅파마들의 관심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8년을 전후해 10건 내외의 공동연구가 진행됐던 것에 비해 2004년 60건 이상으로 폭증했다. 특히 2005년 암젠(Amgen)이 앱제닉스를 22억 달러에, 아스트라제네카는 2005년 CAT를 13억 달러에, BMS가 메다렉스를 2009년 24억 달러에 인수했고, 다이악스는 2016년 샤이어에 인수됐다. 완전 인간화 항체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 중 리제네론만이 인수합병이 아닌 독자 성장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한 것이다.

완전 인간화 항체 플랫폼 기술 중 파지 디스플레이 기술은 CAT와 다이악스가 대표적이다. 다이악스의 경우는 GSK, 젠자임(Genzyme), 모포시스(Morphosys), MSD, 바이오젠(Biogen), 사이토젠(Cytogen), 디바이오팜(Debiopharm) 등 다수의 기업에 대해 비독점적 라이선싱을 제공했다. CAT 역시 제넨텍, 화이자(Pfizer), 릴리(Lilly), BASF, 미쓰비시(Mitsubishi) 등을 포함해 다수의 기업에게 타깃 기반 라이선싱을 제공했다.

제노마우스 플랫폼을 가진 앱제닉스는 암젠,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등을 대상으로 타깃 기반 독점 라이선싱을 진행했다(2010년 기준 앱제닉스 기술을 적용한 임상 파이프라인은 18개). 메다렉스의 얼티맵(Ultimab) 플랫폼은 릴리, J&J, BMS, GSK, 젠맙(Genmab), 노바티스 등을 대상으로 타깃 기반 독점 라이선싱을 진행(2010년 기준 메다렉스 기술적용 임상 파이프라인은 34개)했다.

이에 반해 리제네론은 내부 파이프라인 발굴용 비독점적 라이선싱을 아스트라제네카, 아스텔라스에 대해 제공했을 뿐, 사노피와의 장기 공동연구 외에는 어떠한 형태로도 독점적 기술협력을 진행하지 않았다.

혹자는 리제네론이 광범위한 라이선싱을 추진하지 않은 것을 벨로시이뮨 기술의 열등성 때문이라고 해석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리제네론의 신약개발 비용은 2003~2013년 평균 7억3600만 달러였다. 당시 평균은 43억 달러로 리제네론의 연구개발 생산성이 7배 이상 높았다(Forbes, 2013. 8.11, How Much Does Pharmaceutical Innovation Cost? A Look At 100 Companies).

이러한 독보적인 연구개발 생산성은 리제네론 항체 플랫폼이 가지는 우수성으로 인해 임상 실패율이 훨씬 낮았기에 가능했다.
독점적 플랫폼 기반 공동연구의 중요성
통상적으로 파이프라인 중심의 바이오텍은 기술적 불확실성이 제거된 상태의 후보물질을 도입해서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임상적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임상개발에 대규모 자본이 투자돼야 하며, 후보물질 단계에서 기술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면 탄탄한 역량을 가진 개방형 협력팀의 좋은 선구안 및 네트워크를 확보해야만 한다.

또한 진행하던 임상이 실패할 경우 이를 신속하게 대체할 신규 파이프라인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 파이프라인 중심의 비즈니스 전략은 대규모 자본조달 능력이 확보된 대기업에 오히려 적합한 사업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플랫폼 기반의 바이오텍은 초기 플랫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중장기 투자가 필수적이며 임상에 진입할 때까지 시간 역시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실패한다 해도 곧바로 대체 파이프라인 확보가 가능하며, 플랫폼의 완성도는 파이프라인이 확장되는 만큼 점점 더 높아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전략 측면에서도 플랫폼 기반 바이오텍의 장점은 명확하다. 파이프라인 중심 기업은 보유한 파이프라인을 라이선싱할 경우 그 자체로 해당 회사의 핵심자산을 매각한 효과가 발생한다. 공동개발 역시 1개 이상의 기업과 진행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플랫폼 기반 기업은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대상으로 라이선싱, 공동개발, 비독점적 공동연구 등 다양한 사업개발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빅파마와의 장기적인 공동연구 파트너십 확보에 유리하다. 신약개발 기업의 경우 높은 변동성을 가지는 주식시장으로부터 안정적 자본조달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10년 이상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신약개발의 특성상 단기 테마 변동성이 높은 주식시장으로부터 방화벽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바이오텍 중 상위그룹에 속한 기업일수록 자본조달 수단으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빅파마와의 공동연구, 장기 파트너십 형성이다.

2018~2023년 글로벌 바이오텍 자금조달 경로를 분석한 결과 벤처투자,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본조달, 유상증자에 비해 공동연구 파트너십을 통한 자본조달 비중이 거의 4배 이상 높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사례만이 아니라 1990년 이후 꾸준하게 관찰되는 결과이며, 공동연구 파트너십을 구축한 기업들은 대부분 새로운 모달리티, 혁신성이 높은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리제네론은 차별화된 플랫폼이 가지는 장점을 가장 잘 활용한 사업개발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리제네론은 우수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비독점적 라이선싱을 다수의 기업에 제공할 경우 해당 플랫폼의 독점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으며, 타깃 기반 독점적 라이선싱을 하는 경우라도 충분한 자본력을 가졌기에 더 빠른 속도로 임상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들게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앱제닉스나 메다렉스처럼 당장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의 파트너를 상대로 추진하는 라이선싱은 자신의 미래 경쟁력을 할인 판매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리제네론은 소수 빅파마들과의 비독점적 라이선싱으로 플랫폼 기술의 경쟁력을 입증받고, 사노피와는 다수 파이프라인을 공동개발하는 중장기 독점적 연구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Fc 사일런스(Silence) 기술을 보유한 제넨텍과 젠맙의 경우에도 관찰이 된다. 이들 두 회사는 자체 개발하고 있는 파이프라인, 공동연구 파트너사와 개발하는 파이프라인 외에 해당 기술을 라이선싱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역시 잠재적 경쟁자의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이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많은 라이선싱 협력으로 인해 독점적 경쟁력을 상실한 경우도 있다. 시나픽스(Synaffix)의 경우 우수한 위치 특이적 링커 기술을 보유했다. 10개 이상의 ADC 신약개발 기업에 게 해당 기술을 라이선싱하면서 독점성이 크게 약화됐다. 뿐만 아니라 론자가 시나픽스를 인수한 뒤 해당 기술을 툴 박스 서비스로 제공하면서 위치 특이적 기술은 더 이상 독점적이 아니라 누구나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기술이 된 것이다.





<저자 소개>
김태억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에서 전략본부장과 사업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신약 포트폴리오 관리, 라이선싱 인/아웃, 빅파마와의 공동연구 등 비즈니스 개발(BD) 업무를 총괄했다. 리드컴파스인베스트먼트를 설립, 차세대 모달리티 중심의 기획창업을 진행했다. 현재 Fc 이펙터(Effector) 기능을 제거한 항체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계열 내 최초 신약을 개발하는 크로스포인트의 대표다.

**이 글은 바이오 전문 월간 매거진 <한경 BIO Insight> 2024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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