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기술특례] 유예 끝나면 어쩌나… 관리종목 ‘경고등’ 56개社

강정아 기자 2024. 4.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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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성과 기술력이 있지만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자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도입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96%의 기업이 상장 당시 제시한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4곳 중 3곳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기술특례기업의 81%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퇴출을 유예해 줘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사이버 보안 전문기업 시큐레터는 2023년 8월 기업공개(IPO)에 나서면서 연 매출 57억원, 영업손실 3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매출은 26억원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고, 영업손실 규모는 57억원으로 예상보다 더 컸다. 이 같은 재무제표마저 회계 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일 시큐레터를 관리 종목으로 지정하고 주식 거래를 정지했다. 시큐레터가 이의신청한 뒤 개선기간 내에 ‘적정’ 감사의견을 받으면 거래가 재개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시큐레터에 투자한 주주들은 상장하고 약 7개월 만에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것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소액주주 커뮤니티 등에는 기술특례상장이 상장할 수 없는 기업의 코스닥시장 진입 창구가 된 것 아니냐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시큐레터는 재감사 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해 주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 3곳 중 2곳꼴로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는 가운데 코스닥 상장사 지위를 계속 지켜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8년 이후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급증한 점을 고려할 때 관리종목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올해부터 시험대에 오를 기업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코스닥시장에 기술특례로 상장된 213개 기업 중 시큐레터를 비롯해 올리패스, 파멥신, 셀리버리, 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 이노시스, 엔케이맥스, 인트로메딕 등 8개사가 관리종목으로 지정돼 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관리종목 비중은 3.7%로 코스닥시장 평균(4.6%)보다 낮다.

하지만 이는 관리종목 지정유예에 따른 착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시장 상장사 중 ▲매출 30억원 미만 ▲최근 3년 내 2회 이상 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이 자본의 50% 초과 ▲4년 연속 영업손실 ▲자본잠식률 50%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등의 사유가 발생한 곳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이후 개선되지 않으면 상장폐지로 이어진다.

하지만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매출과 손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관리종목 지정을 면제해 주고 있다. 매출과 손실 요건과 관련한 관리종목 유예 기간은 상장한 해를 포함해 각 5년, 3년이다. 예를 들어 2020년에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은 올해 말까지 연 매출이 30억원을 밑돌아도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조선비즈가 기술특례상장기업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매출 또는 손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관리종목 지정이 유예된 기업이 56곳이었다. 유틸렉스는 지난해로 매출 요건 유예기간이 끝났는데 지난해 매출이 5억여원에 불과했다. 메드팩토의 경우 올해까지 매출 요건 유예기간이긴 하지만 지난해 매출이 없었다.

신규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2018년 21개 → 2019년 22개 → 2020년 25개 → 2021년 31개 → 2022년 26개 → 2023년 35개 등 증가세를 보여 온 만큼, 관리종목 유예 종료 시점 또한 줄줄이 돌아오게 된다. 기술특례상장 출신 관리종목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정서희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성장성을 믿고 투자한 주주들 입장에선 관리종목 지정은 날벼락이다. 최근 3년간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지정만으로도 일주일 동안 주가가 평균 5% 가까이 하락했다. 또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한국거래소 판단에 따라 주식 매매가 정지될 수 있고, 증권사를 통한 신용·미수거래도 불가능해진다.

최악의 경우는 상장폐지다. 유네코는 기술특례상장 기업 중 1호 상장폐지라는 오명을 남겼다. 유네코는 2018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할 당시 국내 철도차륜 전삭기 시장의 97%를 장악한 1위 업체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영업손실이 계속됐고, 2021년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불거졌다. 이듬해 분식회계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유네코는 지난해 1월 결국 상장폐지됐다.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 입성 문턱을 낮춘 만큼 주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장 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IPO 전에는 연 2회 IR(기업 설명) 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한 뒤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규정이 없다”며 “주주들에게 기업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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