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41〉AI 시대 언어의 키워드, 뉘앙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챗GPT가 공개되어 기술 업계를 들뜨게 만든 지 1년이 넘었다. 최근 이 같은 인공지능(AI)의 가능성이 과대 포장되었다는 경고에도,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 2월에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챗GPT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특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20%가 업무용으로 챗GPT를 사용했다고 답했으며 이는 작년 7월의 조사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3분의 2가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학습용으로 사용한 이들의 17%의 증가 수치까지 포함하면 챗GPT의 영향력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거대해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챗GPT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라는 점이다. 오픈AI는 일반 AI의 출현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다음 세대 챗GPT 출시를 앞두고 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대화형 AI를 통합하기 위해 모든 제품 라인 재설계를 위해 인력을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또 다양한 스타트업들은 번역, 마케팅 등 기업 고객을 위한 특정 업무를 전담으로 수행할 수 있는 맞춤형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AI 도구를 사용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이 피할 수 없는 기술의 새롭고 편리한 혜택의 대가로 무엇을 잃을지도 고민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언어 사용 능력 개발의 기회 상실이 있다. 업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메일 작성 및 확인 시의 자동 번역 기능은 일상적인 언어 학습의 필요를 이미 꽤나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삼성의 새로운 갤럭시 S24 스마트폰은 전화 통화를 실시간 통역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으며 언어 학습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프스피크는 아예 AI 아바타를 등장시킨 광고를 통해 언어 학습의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가짜 광고까지 만들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질 쿠시너 비숍 언어 인류학 박사는 언어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생하고 설득력 있는 표현이라 주장한다. 그는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 언어를 통해 연결되고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단어, 문구 또는 은유의 선택은 곧 아이디어, 세계에 대한 가정, 존재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 또는 지역적 맥락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기에 민족지학적 분석에 있어 이러한 형태의 뉘앙스는 곧 핵심 데이터라 이야기한다.

지난 2월 한 극우 음모론자가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연설하는 히틀러의 AI 생성 클립을 X에 공유해 1500만회 이상 재생된 사례가 있었다. 히틀러가 영어로 말하는 연설을 듣는 경험은 신기했고,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보다 조국을 걱정하는 것 같다는 댓글마저 남겼다. 이 같은 사례를 두고 현재는 온라인에서 확인된 자극적인 하나의 사건이라 넘길 수 있으나 AI가 더 빠르고 정교한 작업을 하게 될 앞으로를 고려해 본다면 이 언어적 뉘앙스의 힘과 관련된 시사점은 충분히 확인 가능해 보인다.

현재 대부분의 AI 번역 사용자들은 번역이 원본에 충분히 가까운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데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느새 휴대폰 번호를 외우던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스스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을 갖출 기회도 점차 사라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언어는 사람들이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을 형성하기에 다른 언어로 된 말하기, 읽기, 쓰기를 배우는 건 우리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기술도 이러한 인간적인 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는 학교에서 언어 학습의 문화 간 요소를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수업을 제공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외국인이 한국인을 부를 때의 '사장님', 어르신에게 말을 건넬 때의 '선생님' 등 다양한 상황 속 서로 다른 이를 지칭하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영어로 번역한 대사는 오로지 'Sir'로만 표현이 된다. 이 보이지 않는 문화적 배경을 머금은 언어의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다면 해외의 시청자들의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앞으로도 놓쳐서는 안 될 주요한 경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