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호떡집에 불났다”…정작 걱정해야 할 대상은 내부자라는데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3. 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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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자본주의 버팀목 역할 중산층
경제적 지위 추락 걱정에
포퓰리즘 달콤한 구호 넘어가
세계 곳곳 ‘갱스터 국가’ 판쳐

권력과 부, 그리고 불평등 너머에는 언제나 포퓰리즘이 나병처럼 자라 곪아간다. 좌절하고 분노한 대중은 포퓰리즘 정치에 한 표를 행사하고, 이로써 번영은커녕 정치적 극단이 경제에 금을 낸다. 세금을 풀어 자신을 배불릴 정당만이 치외법권을 허락받는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초상이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즈(FT) 수석경제평론가의 책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가 출간됐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경제평론가”란 수사가 어색하지 않은 저자가 포퓰리즘의 망령을 들여다보면서 상호 보완적이었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이혼 위기’에 처해 있음을 냉철하게 진단한 책이다.

오늘날 글로벌 파워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중이다. 20세기 세계의 축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독일과 미국으로 옮겨갔다. 21세기 들어서는 그 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 중이다. 이 책은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을 낸다.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권위주의의 시대가 정치 흐름을 역류시켰다는 게 저자가 보는 세계 정세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무력으로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겠다고 나섰다. 연말 대선의 강력한 핵으로 부상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햇다. 시진핑의 중국은 ‘독재자의 귀환’을 알렸다. 나렌드라 모디의 인도, 자이르 보우소나르의 브라질도 독재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의 공감 없이 푸틴이 우크라아나를 침공했을 확률이 적으므로 이제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간의 전쟁은 상상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게 됐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이들 지도자의 스타일은 자국 이데올로기 시스템의 해외 전파를 갈망했던 공산주의, ‘독일어권 민족’이란 공통분모 하에 전체주의 확산을 노골적으로 외쳤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과 사뭇 다르다. 이들의 독재는 ‘적어도’ 자국민에겐 부드럽다. 유권자는 혐오감이 덜한 독재자에게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좌절과 분노를 느끼던 시민들은 포퓰리즘에 감염돼 권위주의자에게 정권을 허락한다. 계층구조상 몇 단계 위쪽에 있지만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높지도 못한 이들, 그럼에도 방어해야 할 지위가 있는 유권자들의 ‘지위 불안’이 포퓰리즘 정치의 자궁이다.

저들은 자신이 위계질서의 최하위로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기존 정부의 경제적 실패, 자녀들의 훼손당한 미래, 삶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에 분노하면서 결국 자신이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프로젝트에 속한 일부가 아니라고 느껴왔다. 독선의 리더는 평범한 얼굴들의 굴욕감을 분노로 전환시켜 자기 정치를 펼친다.

승기를 잡은 권위주의 정치인은 독립적 기관과 야당을 억압한 뒤 절대적인 권력의 통치자로 부상한다. 법원을 휘하에 두고 자의적인 지배하며 민주주의를 먹어치운다. 포퓰리즘의 악덕과 전제주의의 악덕은 부패를 잉태하는데, 이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장기적 실패로 이어진다는 게 저자의 형세 판단이다. 저자는 이를 ‘도둑질 정치’와 ‘갱스터 국가’로 은유한다.

과거 좌파 포퓰리스트의 잘 벼린 칼은 착취적 기업과 금융 엘리트를 벴다. 이들은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면서 장도를 휘둘렀다. 우파 포퓰리스트도 엘리트에는 반대하지만 그들의 화살은 경제계나 금융계를 과녘 삼지 않는다. 학계, 관료, 문화 엘리트, 나아가 이민자와 난민이 이들의 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유시장을 선호하는 정책을 고수했지만 정작 이민과 무역에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선택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의료보험법보다 더 나은 의료보장 플랜을 제공하겠다는 포퓰리즘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어 집권에 성공했다. 결과는 어떤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을 걱정하지만 실은 민주주의의 적이 내부에 있다고도 책은 일갈한다.

과거 미국과 구소련은 제로섬 관계였기에 냉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이 지금까지 역동적인 시장경제와 전체주의 국가 간의 놀라운 결합을 이뤄왔으며, 중국은 구소련과과 같은 방식으로 해외에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하지도 않으므로 미중 관계가 냉전을 맞이했다고 보는 시각에 반기를 든다. 그의 눈에 신냉전의 도래는 ‘망상’이다.

대신 저자는 정작 걱정해야 할 대상은 ‘내부자’라고 꼬집는다. 미국은 지금 호떡 집에 불난 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뒤엎으려 했다. 공화당은 그런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저자는 2024년이 ‘미국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종말을 맞이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부식현상은 미국, 러시아, 인도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필리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튀르키예, 야로슬라프 카친스키의 폴란드, 빅토르 오르반의 헝가리도 독재라는 녹이 슬고 있다. 원제 ‘The Crisis of Democratic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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