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월호 원인, 6대 2였는데…정치 입김에 3대3 됐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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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2.06. 오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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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법률가와 과학자가 본 세월호와 이태원]
김창준 전 선체조사위원장 증언
민주당이 추천한 참여연대 출신
"위원들 내인설 6 대 외인설 2였는데
정치 영향, 2명 기권해 결국 3대 3"
"생각 다른 위원 3명 적폐로 몰아
내부 인사가 보고서 조작하기도"
조상래 교수 "잠수함설은 배제해야"
일부 유족은 조사관들 편향성 지적
"조사관들 싸구려 음모론 끼워맞춰"
정쟁·음모론 배격, 과학 존중해야
장세정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핼러윈 축제 기간에 발생한 10·29 압사 사고로 158명이 희생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가 마무리 단계여서 경찰·소방·구청 등 참사를 키운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 결과가 하나씩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안 또는 탄핵안을 놓고 정치 공방이 계속되고 있어 볼썽사납다.

2017년 8월 16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초청 간담회에서 한 가족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인양돼 목포시 목포신항만에 세워진 세월호.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는 한국사회는 과연 안전한지, 안전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앞으로 대형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미수습자 5명 포함 304명 사망) 이후 보여준 모습처럼 이번에도 참사를 정치적으로 소비할 경우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과 불신만 키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서울 도심의 비좁은 골목길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젊은 생명을 잃은 대형 참사라는 점은 닮았다. 이런 참사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 세월호 원인 조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거나 지켜본 법률가와 과학자의 경험과 생각을 들어봤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김창준 변호사가 보고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우리 편이 아니었다” 공격도
2017년 3월부터 1년 4개월간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선조위) 위원장을 역임한 김창준(67) 변호사는 해상 분쟁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세경 대표변호사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단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그는 민주당 추천 몫으로 선조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2018년 8월 종합보고서를 낼 때 세월호 자체의 복원력 부족을 지적한 '내인설'을 지지했다. 잠수함 등 외부 충돌 때문에 침몰했다는 '외인설'(열린안)을 배척했다.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과학적 판단을 중시한 소신 있는 행보였지만, 좌파들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며 공격하기도 했다.
-세월호 때처럼 이태원 참사도 정치화됐다.
"이태원 참사 당시 112와 119 신고가 빗발쳤는데 즉시 출동 못 한 것이 뼈아프다. 어이없는 참사다. 전문 법률가 자격으로 세월호 선조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고는 있는 그대로 과학과 기술로 처리하면 되는데 왜 정치적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적으로 원하는 답을 내달라는 압력을 받았나.
"문재인 정부 시절 선조위가 중간에 해체될 위기가 있었다. 목포 선조위 사무실 앞에서 정치 집회를 열어 위원 8명 중 3명을 '적폐 세력'으로 몰았지만, 나중에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내인설을 싫어하는 측에서 그렇게 몰아갔다."
-선조위의 구체적 의결 과정은 어땠나.
"과반 의결인데 위원 2명은 기피 또는 기권했다. 나머지 6명이 내인설과 외인설을 놓고 표결했는데 3대 3으로 나왔다. 그런데 보고서 출판 과정에서 선조위에 참여한 내부 인사가 압력을 가해 외인설을 열린안으로 바꿔서 인쇄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선조위가 의결한 내용을 바꿨으니 공문서 조작인 셈이다."
세월호 선체조사위 보고서 '열린안'. 당초 위원회는 '내인설'과 함께 '외인설'을 의결했는데 보고서 인쇄 단계에서 한 내부 인사가 임의로 '외인설'을 '열린안'으로 바꿨다고 한다. 공문서 위조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추천을 받고도 내인설을 지지했다.
"나는 해양 전문 법률가여서 선박구조도 알고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안다. 세월호를 인양하기 전에 나온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결론이 선체의 문제를 지적한 내인설이었다. 세월호를 인양해 선체를 조사한 선조위의 결론과 같았다. 당시 나를 포함해 위원 8명의 개별적 생각을 종합해 봤더니 내인설 대 외인설이 사실상 6대 2였다. 그런데도 3대3으로 나온 것은 정치적으로 입김이 있었다는 거다. 나를 포함해 (정치적 결론을) 막지 못한 전문가들의 책임이다. 사고가 터지면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누군가 이익을 챙기려 하는 한국사회의 잘못된 습성이 문제다."
-전문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소신을 지켜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하지만 위원회 참여 전문가를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고른다. 그러니 명명백백한 사실인데도 논쟁으로 간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나 특검에 이어 선조위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국과 네덜란드 업체가 참여해 같은 결론을 냈다. 그런데도 불신하니 속상하고 개탄스럽다. 후진적 관행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 희생된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지난 9월에도 어정쩡한 보고서가 나왔다.
"사회적참사위원회(사참위) 위원들은 내인설에 무게를 실었는데 조사국이 외인설에 기울었다고 한다. 선조위 때는 조사국은 지원부서였고 선조위 위원이 결론을 냈는데 이번 사참위는 이상하게도 조사국이 입김을 행사해 독자적 목소리를 냈다. 참사가 터지면 과학에 따라 객관적 조사로 재발 방지 대책을 찾아야지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대한조선학회 회장을 역임한 조상래 울산대 조선공학부 명예교수는 인터뷰에서 "세월호 외부 충돌설은 과학적으로 배제해야 할 시나리오"라고 비판했다. 송봉근 기자

“전문가들이 활동할 영역 사라져”
지난 10월 27일 대한조선학회(회장 이신형)와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회장 이우일)가 공동으로 ‘세월호 침몰 참사-과학적 재난 분석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공동포럼을 개최했다. 이태원 참사 두 달 전인 지난 9월 사참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밝히지 않은 최종보고서를 낸 데 대해 조선·해양 관련 과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조상래(69)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는 그날 목소리를 낸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조선학회장을 역임한 조 명예교수는 "잠수함 등 외부 충돌 가능성을 언급한 선조위 보고서의 열린안은 제외해야 할 시나리오다. 충돌사고라면 흔적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세월호 선체 외부에는 충돌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는 준수해야 할 법규·규정·기준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전형적인 후진국형 해양사고"라고 결론 냈다.
-세월호 진상 조사를 위해 특별법 3개나 만들고 조사위원회 운영에 예산 800억을 썼지만, 정치적 갈등만 키웠다.
"2014년 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 특별조사부 1차 조사에서 사고 원인으로 세월호의 복원성 부족, 부적절한 조타 및 고박 불량에 의한 화물의 이동으로 인해 침수·전복됐다고 밝혔다. 충돌 흔적이 명확히 남아 있지 않아 충돌설은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017∼2018년 세월호 선조위 2차 조사 보고서에 내인설과 열린안을 담았다. 2018∼2022년 사참위 3차 조사에서 선조위 조사 때 제시된 두 시나리오를 검증했다. 충돌설에 대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여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외부 잠수체와의 충돌로 세월호가 전복되고 침몰됐다는 결론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적 논란 때 전문가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아쉽다.
"사고 조사가 정치적으로 흐르면 관련 전문가들이 활동할 여지가 없어진다. 천안함 폭침 사태의 경우 사고 해역에 암초가 없었으면 좌초설을 배제해야 맞는데도 계속 괴소문이 떠다닌다. 선박 외부에 충돌 흔적이 없으면 충돌 시나리오는 근거가 없는데도 계속 주장한다."
-지난 9월 사참위 보고서가 비판받고 있다.
"사참위 위원 중에 조선·해양 전문가가 포함되지 못한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사참위는 상당 시간과 노력을 잠수함 충돌 시나리오 증빙에 소진했다. 대형 참사가 터지면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먼저 따지고 벌주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을 주기 윈한 수사기관의 수사와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는 분리가 필요하다."
핼러윈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진행중인 추모 의식 모습. 장세정 기자

“정해진 결론보다 진실 알고 싶어”
사참위 활동에 참여했던 한 법조인은 "위원회 일부 조사관들은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주로 했고, 처벌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면서 "일부 조사관들은 피해자 유족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이런 편향성은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서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일부 유족은 잠수함 충동설 등 음모론을 비판하고 음모론에 동조하는 조사관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 유족은 "일부 조사관들은 희생자들을 위해 조사했다지만 싸구려 음모론을 끼워 맞추려 조사했다"고 꼬집었다. 또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아픈 내용이어도 좋으니 진실만을 알고 싶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사참위 종합보고서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던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재난 조사는 조사 방향을 설정하고 조사에 참여할 주체를 선정하고 조사 결과를 피해자와 국민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끈기 있게 합의를 통해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조사는 말 많고 탈 많았던 세월호 진상 조사의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김어준식의 허황한 음모론을 배격하고 정치가 아닌 과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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