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핵연료 재활용’ 불씨 살렸다… 파이로 R&D 명문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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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2.03. 오전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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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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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에 빠졌던 파이로
원자력계 반발에 R&D 명문화하기로
“기술 상용화 시 국산 원전 수출 늘어날 것”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파이로 프로세싱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로봇팔로 방사능 차폐장치 내부에 있는 폐연료봉을 조작하고 있다.


정부가 1997년부터 25년간 8000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진행해 온 ‘사용 후 핵연료 처리 기술(파이로프로세싱·파이로)’ 연구개발이 무산위기에서 가까스로 불씨를 살렸다.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원자력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는 지난 11월 중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에 파이로 연구개발(R&D) 규정을 명문화하는데 합의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소속 김영식 의원(경북 구미시을)과 이인선 의원(대구 수성구을)은 관계부처 실무자들과 함께 파이로 연구개발 규정을 어떻게 명문화할지 협의 중이다.

파이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섭씨 500~650도의 고온에서 전기분해했을 때 나오는 다양한 핵물질을 분리·회수하는 기술이다. 사용 후 핵연료는 방사능수치가 매우 높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되는데 파이로 기술을 통해 부피를 크게 줄여 처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또 파이로 과정을 거치면 일부 폐기물은 다시 연료로 재활용할 수도 있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약 45년간 원전을 운영해왔으나 아직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못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쓸지도 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껏 사용 후 핵연료는 원전 부지에 설치한 임시 저장소에 보관해 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파이로와 같은 처리 및 재활용 기술이 절실하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에서 나온 폐연료봉에서 미처 핵분열을 하지 않은 부분을 소듐냉각고속로라는 원자로에서 다시 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연탄재에서 미처 타지 않은 부분을 모아 새 연탄을 만드는 것과 같다. 연구진은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원전 폐기물의 방사능은 1000분의 1로, 부피는 2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미국 연구진과 201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500억원을 들여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수행했다. 국내에서는 원전에서 플루토늄이 없는 모의 핵연료로 실험했고, 미국에서는 실제 폐연료봉에서 핵연료를 추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원자력계에 따르면 현재 국산 파이로 기술은 사용 후 핵연료 분해·분리·회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받은 상태다. 이제부터는 여러 원전 현장에서 쓸 수 있도록 상용화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에 필요한 기간은 13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산자부가 내놓은 ‘제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에 파이로 관련 내용이 빠지면서 정부가 파이로 R&D 투자를 멈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파이로 R&D에 대한 내용이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다시 포함됐지만, 이후 발의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관련 특별법에서 파이로 R&D 관련 내용이 빠지면서 원자력계의 불안감이 커졌다. 야당 역시 파이로 연구개발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수십 년 간 이어온 파이로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됐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와 산자부, 외교부가 지난달 여러 차례 논의 끝에 파이로 R&D 방안을 특별법에 명문화하는데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파이로 사업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특별법에 들어갈 내용은 ‘파이로 R&D를 지원할 수 있다’는 식의 임의 규정 형태가 될 전망이다.

또 과기정통부와 산자부가 원자력 분야 출연연과 함께 파이로 R&D 로드맵을 만들어 구체적인 지원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원자력계는 파이로 R&D가 기사회생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파이로 R&D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국내에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할 장소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원자력 발전 수요는 계속 늘고 있던 상황에 이는 상당한 희소식”이라며 “파이로 R&D에 대한 내용이 아예 법에 명문화가 되면 재정과 인력 차원에서 큰 추진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파이로 기술 상용화에 성공하면 향우 원전 수출에도 좋게 작용할 수 있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은 “핵연료로 전기를 만드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를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것까지 원자력 발전 주기에 포함된다”며 “파이로가 완성되는 건 국산 원자력 발전 기술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지금보다 원전 수출 길이 더 많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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